요즘 한국은행 국장급 간부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회의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라고 합니다. 이주열 총재가 불시에 소집하는 자유 토론 형태의 비공식 회의인데, 토론 주제를 미리 알려주지 않아 간부들은 아무 준비 없이 회의에 들어가게 된다네요.

"총재가 직접 주재하는 회의에 불려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인데, 불쑥 던져진 주제에 답을 제대로 못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브레인스토밍 참석하라'는 연락만 받아도 가슴이 철렁합니다."(한은 A국장)

경제 전문가인 한은 국장들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브레인스토밍 주제들이 만만치 않았던 탓입니다. 금리, 물가, 성장률, 환율처럼 모범 답안이 있는 '기출 문제'는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 대신 저출산, 고령화, 구조조정 같이 경제 전반을 꿰뚫고 있어야 조리 있게 답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종합 문제'가 등장하고 있답니다.

B국장은 "총재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주제가 나오는 순간 '에이, 오늘은 그냥 혼나고 말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 총재에게 한은 간부가 물어봤답니다. "브레인스토밍 하는 건 좋은데, 주제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고 불시에 소집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이 총재는 "이 사람아, 주제를 미리 주면 부하들 시켜서 준비해 올 텐데 그게 국장들 본인 실력인가. 시험 문제 알려주고 시험 치는가"라고 반문했답니다. "한은 국장쯤 되면 담당 분야가 아니라도 어떤 사안이 경제에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을 늘 하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능력 없는 것"이라고도 말했답니다.

브레인스토밍 참석자들이 진땀을 흘리는 데는 이 총재의 '깐깐한 스타일'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C국장은 "총재가 기억력이 비상해서 '당신이 말한 건 내가 알고 있는 데이터와는 다른데' '지난번에 추진하겠다는 일은 어떻게 됐나'라고 콕 찍어서 말하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이에 대해 D국장은 "이 총재 임기가 내년 3월 말까지인데 대통령 탄핵소추, 차기 대통령 선거, 새 정부 출범 등 외풍(外風)이 불어닥칠 요소가 많으니 미리 '집안 단속'을 강하게 하려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해설을 달았습니다.

유능한 한은 간부들이 아까운 시간을 쪼개어 참여하는 브레인스토밍인 만큼 단순한 집안 단속 차원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