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 6개국 과학자들이 30억쌍의 단백질로 이뤄진 DNA를 해독하기 위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후 2003년 4월 마침내 인간게놈 지도가 100% 완성됐다. 이는 환자 치료의 혁신을 가져올 ‘개인맞춤형 정밀의학’의 실현과 ‘게놈산업’의 성장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된지 10여년만에 바야흐로 ‘개인 게놈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유전자 분석 기술과 장비들을 개발하는 기업과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DB

◆ 10만원 게놈 해독 시대 오나

올해 1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참석한 미국 유전체분석회사 일루미나의 프란시스 데소우자 CEO는 하이식X에 이은 신제품 노바식을 출시하면서 “앞으로 100달러(한화로 약 12만원)에 개인의 유전자 지도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선언했다.

실제 해독기술이 발전하면서 유전자 해독 비용은 현재 1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간 게놈 지도를 완성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리고 비용만 약 3조원이 투입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인 셈이다.

게놈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유전체 시장 규모는 2013년 111억달러에서 연평균 12.2% 성장해 오는 2018년 198억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국가 차원의 글로벌 정밀의료산업 육성정책으로 유전체 분석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데다, 유전체 분석 비용이 저렴해져 관련 시장이 B2B에서 B2C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정선 마크로젠 대표는 “기기의 속도가 빨라져도 분석에 들어가는 시약 가격이 함께 낮아져야 하기 때문에 10만원 게놈 해독 시대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라면서도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므로 약 5년 후에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전세계 유전체 시장 성장 전망

◆ 전세계 관련 스타트업 2년 새 2배 이상 증가

게놈 해독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생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모델을 내걸고 블루오션에 뛰어들고 있다.

13일 미국 스타트업 웹사이트 AngelList에서 검색해본 결과, 유전자 검사 스타트업(Genetic Testing startup)으로 95곳이 등록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 2014년 12월 기준 36개에 비해 약 2년여만에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미국의 23앤드미(23andME)와 카운실(Counsyl), 우리나라의 마크로젠, 테라젠이텍스, DNA링크 등도 여기에 속해있다.

진단 관련 스타트업(Diagnostics Startup)들도 지난 2014년 12월 기준 110개에서 현재 279개 회사로 늘어났다.

올해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 서비스를 내걸고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선 금창원 쓰리빌리언 대표는 게놈 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지금이 1970년대 후반 애플 컴퓨터가 나오는 시기와도 같다”고 설명했다.

1976년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PC)가 등장하고 이후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다양한 신생기업과 각종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듯 유전자 진단 분석 시장도 급팽창하는 시점이라는 얘기다.

금 대표는 “인터넷과 PC의 발전이 전세계시장의 지형과 개인의 삶에까지 큰 변화를 일으킨 것처럼 머지 않아 게놈산업에서도 빅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도 게놈산업 블루오션에 뛰어든 유전체 분석 기업 및 유전자 해독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개발 스타트업들이 있다. ▲디엔에이링크(127120)랩지노믹스(084650)마크로젠(038290)▲메디젠휴먼케어 ▲이원 ▲제노플랜 ▲테라젠이텍스(066700)▲휴먼패스 ▲젠스토리 ▲마이지놈박스 ▲쓰리빌리언 등이 대표적이다.

◆ 규제에 갇힌 한국...유전자 분석시장은 그림의 떡?

지난해 6월 정부가 체질량 지수, 탈모, 비만, 카페인대사 등 12개 항목의 경우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소비자 개인이 직접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DTC(Direct-to-Consumer)시장을 허용한 데 이어 암환자의 유전체 분석에 대한 건강보험을 적용키로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규제 완화를 두고 ‘빛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관련 업체 대표는 “앞서 복지부가 허용한 12개 항목 모두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라면서 “의미없는 유전자만 골라 규제를 완화하는 시늉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 제도 상에서는 관련 기업들이 연구용으로만 개발하거나 또는 병원을 통해서만 제품을 공급,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시장에서 허용하는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가 허가한 제품군으로는 세계 시장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수익을 거두기 힘들다”면서 “약 7개 회사가 해당 항목에 관한 제품을 만들었으나, 모두 판매 실적이 저조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가령 미국이라면 고객이 10만원 수준으로 유전자 분석 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을 통해서만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유통사와 병원에 추가로 돈을 내야 해 서비스 가격이 100만원까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결국 환자,이용자에게도 큰 가치를 주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이 허용하는 것을 제외하곤 모두 못하게 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하에서는 벤처 창업에 도전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전자 분석 관련 스타트업 대표는 “규제 때문에 거의 모든 사업이 원천봉쇄돼 있으니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한국을 제외한 시장을 타깃으로 해야하는데 규모도 작고 투자금도 적은 신생업체들이 도전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현 제도 상에서는 한국이 게놈산업으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