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12일 ‘상법개정안의 다섯 가지 쟁점에 대한 검토의견’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권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해외 투기자본에게만 유리한 개정안이라는 게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은 2월 임시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밖에도 2여건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되어 있다. 야권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될 경우 사실상 마지막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이번 임시 국회에서 최우선 과제로 상법 개정안을 거론한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도 여야 협의를 통한 개정안 통과에 전향적인 입장이다.

핵심은 감사위원을 선임 단계에서부터 이사회 이사와 따로 뽑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특정 이사선임에 의결권을 집중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다. 현행 상법은 이사회 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을 뽑도록 하고 있다. 이를 바꿔 감사위원을 따로 뽑고 선출 과정에서 의결권을 지분의 3%까지만 인정하자는 것이다. 또 집중투표제는 선임하는 ‘1주 1표’ 대신 이사 수만큼 투표권을 갖되, 그 투표권을 한 명에게 몰아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령 이사 3명을 선임할 때 주주는 1주 당 1표가 아니라 1주 당 3표를 받고, 이 3표를 자유롭게 배분해 쓸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모두 소수 주주 권리를 키우고, 대주주 권한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한경연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에 대해 “외국계 투기 자본은 보유 지분을 여러 개의 법인으로 나눠 보유하면서, 이를 이용해 3% 제한을 회피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가령 2003년 영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과 SK그룹 간의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을 때 소버린은 보유 지분 14.99%를 5개로 쪼개 각각 2.99%씩 보유하고, 의결권을 모두 행사했다. 하지만 SK는 대주주 의결권 제한 3% 규정 때문에 경영권 방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분리 선임을 강제해 의결권 제한을 강화하는 개정안은 주주의 이사선임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에 대해서 한경연은 “민법의 기본 원칙인 사적자치(私的自治)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미 정관 변경 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면서 소수 주주의 권익을 보장하고 있는데 집중투표제까지 도입하면 대주주는 심각한 역차별을 받게 된다”고 비판했다. 한경연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 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 멕시코, 칠레 등 3개국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우 1940년대 22개 주에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었는데,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범람하면서 대부분 개별 기업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법규를 바꾸었다.

박수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방향이 있기 때문에 집중투표제 실시 여부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좋다”며 “집중투표제도가 의무화되면 외국 투기펀드들에 의해 우리 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한경연은 모회사 소수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수대표소송제, 우리사주 조합에 사외이사 선임권 부여, 전자투표제 도입 의무화 등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