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와 외국환 거래 업무를 허용해야 합니다. 증권업계에만 적용된 차별 규제 뒤에는 은행이 숨어 있습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전담 태스크포스(TF) 팀도 꾸렸습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새해에도 “불합리한 규제 철폐”를 주장하며 은행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황 회장은 6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2017년 한해 동안 (증권업계에만) 부당한 대우나 제도를 찾아내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이번 간담회는 금투협 출범 8주년과 황 회장 취임 2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이 자리에는 황 회장을 비롯해 금투협의 주요 임원들이 참석했다.
황 회장은 증권업계에만 적용 중인 불합리한 규제를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하며 법인 지급결제 제한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사는 법인이나 개인 모두를 대상으로 지급결제 업무를 실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업계의 반발로 증권사들은 현재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못하고 있다.
황 회장은 “2009년 4월 증권사의 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돼 25개사가 참여비용으로 약 4000억원을 냈으나 은행권의 방해로 개인 대상 업무만 시행되고 법인 지급결제는 아직까지 보류 중”이라며 “증권사들은 수천억원의 참여비용을 내고도 10여년째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의 법인지급 결제 허용은 금융결제원 규약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며 “지급결제는 사용자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특정 업계가 독점하고 다른 업계의 진입을 막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임기를 1년 남겨둔 황 회장은 2017년이 사실상 마지막 해인 만큼 규제 철폐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고 전했다. 일례로 황 회장은 최근 금투협 내부에 ‘균형발전 TF’를 꾸리고 정부에 건의할 규제 개혁 아이디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허욱 증권지원부장이 이 TF를 이끌고 있다.
황 회장은 “기울어진 운동장(불합리한 규제)을 평탄하게 다지기 위해 정부에 건의할 사항이 소소한 것까지 합쳐 100가지는 된다”며 “왜 고쳐줘야 하는지, 개혁하면 뭐가 좋아지는지 등을 정리 중”이라고 말했다.
법인 지급결제 제한뿐 아니라 외국환 거래 업무 제한도 증권업계에 대한 대표적 차별 규제라고 황 회장은 말했다. 그는 “외국환 관련 규제 개혁은 기획재정부 소관인데, 오랫동안 꾸준히 요구해도 잘 들어주지 않는다”며 “이 역시 배후에 은행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핀테크 회사도 하고 카드사도 할 수 있는 외국환 거래 업무를 증권사만 못하는 건 말이 안된다”며 “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 등 한국을 대표하는 증권사들이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사들에 대한 규제 기준을 해외 규제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황 회장은 덧붙였다. 황 회장은 “흔히들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왜 나오지 못하냐고 말하는데, 지금의 규제 환경에서는 탄생하기 힘들다”며 “정부는 국내 증권사들이 글로벌 업체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도록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황 회장의 이 같은 규제 개혁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취임 후 언론을 만나는 자리에 나올 때마다 “증권업계가 은행·보험업계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규제 개혁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지난해 7월과 12월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황 회장은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와 외국환 거래 업무가 허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명동 환전소도 하고 있는 외환 거래가 은행 고유의 업무라는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올해 협회와 임직원, 회원사들이 힘을 합쳐 국내 금융시장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