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 4사에 올해는 사상 최고 해가 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올해 전체 영업이익이 '마(魔)의 장벽'이라던 7조원을 돌파,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실적 때문에 초조해하곤 했던 정유업계는 모처럼 느긋한 표정이다. 전자·조선·자동차 등 주력 업종이 경기 침체 속에 실적이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정유업계는 사실상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유 4사 올해 영업이익 7조원 넘을 듯
20일 본지가 업계 전망치와 증권가 예상치를 종합한 결과, 정유 4사는 4분기에 최소 1조50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SK이노베이션은 4분기 영업이익이 7000억~8000억원으로 예상되며 에쓰오일은 3000억~4000억원 정도 영업이익을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이상의 실적이 예상된다. 3분기까지 정유 4사의 누적 영업이익은 5조6862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4조7321억원)을 넘어섰다. 정유 4사가 4분기에 시장 예상치의 영업이익을 올릴 경우 올해 연간 누적 영업이익은 7조원을 넘긴다. 이전까지 연간 최대 기록이었던 2011년(6조8135억원)을 뛰어넘게 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산유국의 감산 합의로 국제 유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정유사의 실적을 좌우하는 정제 마진(정유업체가 원유를 사다 정제해서 남기는 이익)까지 상승 추세로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은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배럴당 44.12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석유수출국기구가 감산에 합의한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19일 현재 52.86달러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정유업계는 '시차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정유업체가 원유를 들여와 정제하는 데에는 40일 정도 걸린다. 석유제품을 만드는 동안 국제 유가가 올라가면 제품을 팔 때 유가 시세에 맞춰 값을 높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인도 등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을 많이 소비하는 국가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면서 정제 마진이 배럴당 7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통상 '배럴당 정제 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수출도 최고기록 세울 듯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해 거둔 최대 수출 기록도 갈아치울 기세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는 올해 들어 10월까지 석유제품을 총 4억737만 배럴 수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수출량(3억9792만 배럴)을 900만 배럴 웃도는 수준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정유업계가 수출 지역을 다각화하고, 정제 설비 효율화에 힘을 기울이면서 효용을 높인 결과"라고 말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호주와 동남아시아 등으로 수출처를 넓히고 있으며 올 들어 튀니지·콜롬비아·핀란드·우크라이나 등을 새로운 수출처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정유업계의 고도화 설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만 국내 정유업체가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실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동원 산업연구원 박사는 "산유국의 감산 불이행으로 유가가 급락하거나 세계적으로 부는 보호무역주의 바람으로 세계 경기가 얼어붙을 경우 국내 정유업체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