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이모(26)씨는 20일 학교 앞 단골 식당에서 'AI 때문에 당분간 계란말이 서비스를 중단합니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이 식당은 계란말이를 기본 반찬으로 줘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씨는 "식당 주인아저씨가 '열흘 전쯤부터 계란을 구하지 못해 계란말이를 만들 수조차 없는 상태'라고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사상 최악의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로 계란 부족 사태가 심해지면서 식당가에 비상이 걸렸다. 공급 부족으로 계란 가격이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계란 자체를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식당들의 반찬 목록에서 계란말이나 계란탕 등이 사라지고, 계란을 주원료로 쓰는 제과·제빵업체들은 전 직원이 계란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다.
회사원 A씨는 지난 16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한 백반 식당에서 6000원짜리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다. 식당 주인은 "계란 가격이 너무 올라서 순두부찌개에 계란을 못 넣어 드린다"며 "계란 대신 순두부를 많이 넣어 드리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A씨는 계란 없는 순두부찌개 대신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식당 주인은 "AI 때문에 계란값이 금값인데 그마저 동났다"며 "우리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업체가 계란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콩나물국밥의 필수품인 계란 노른자를 내놓지 않는 콩나물국밥집도 늘고 있다. 기업체 구내식당에서도 계란 대신 해산물이나 돼지고기 등으로 식단을 짜고 있다.
계란 공급량이 줄면서 규모가 작은 식당들은 계란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한 식당 주인은 "AI 때문에 오므라이스나 계란찜, 계란말이 등을 다른 메뉴로 바꿔야 할 지경"이라며 "대형 빵집이나 프랜차이즈 업체로 계란이 우선 공급되다 보니 우리처럼 작은 식당은 계란을 구경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식 업체와 급식 업체들도 계란이 들어간 메뉴를 조정하고 있다. 이랜드그룹 외식 브랜드 '애슐리'는 샐러드 메뉴에서 계란을 뺐고, 급식업체 아워홈은 계란이 들어가는 메뉴를 어묵 등 육가공품으로 대체해 운영하고 있다.
제빵업계는 계란 가격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한 대형 카스텔라 전문점에선 전 직원이 계란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카스텔라 점주는 "직원들이 계란을 사기 위해 주변 대형 마트와 동네 수퍼마켓 등을 샅샅이 훑고 있다"며 "당장 내일 쓸 계란이 없어 제품 생산 자체를 줄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카스텔라 브랜드 관계자는 "계란 가격 인상에도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해 수익성이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형 제빵업체에서는 지난 19일 일부 직원이 계란을 한 판씩 사들고 출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전날 일부 간부 직원이 '계란 수급이 어려우니 우리도 돕자'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정부가 AI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계란 대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20일 조사한 계란 1판(30알) 평균 소매가격은 6781원으로 한 달 전보다 25.4% 올랐다. 대형 마트들은 최근 2주 사이에 계란값을 약 10% 올렸는데, 판매 제한 등으로 가격 오름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주부 김지연(39)씨는 "올해는 경기가 안 좋아 연말 분위기도 안 나는데, 계란도 맘 편히 사먹기 어렵다"며 "식당가에 이어 가정에서도 계란 반찬이 사라질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