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스페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스포르팅 히혼전에서 스폰서 기업 로고가 평소보다 희미하게 드러나는 흰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이 유니폼의 원료는 천이 아닌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인도양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이용해 스포츠 업체 아디다스가 제작했다. 유니폼 셔츠 하나에 폐플라스틱병 28개가 사용됐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도 홈경기에서 플라스틱 유니폼을 입고 있다. 폐플라스틱이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축구 경기에 환경보호와 자원 재활용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 에마 왓슨도 지난 5월 디자이너 켈빈 클라인이 폐플라스틱으로 제작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섰다.
◇플라스틱 재활용 판도 바꾼 '업사이클'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이나 에마 왓슨의 드레스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폐플라스틱을 고가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업사이클은 개선(Upgrade)과 재활용(recycle)의 합성어로 아디다스를 비롯해 나이키·뉴발란스 등 글로벌 업체들이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폐플라스틱 업사이클 기술은 이렇다. 우선 폐플라스틱을 모아 유독하지 않은 종류만 골라낸다. 골라낸 플라스틱을 잘게 분쇄한 뒤 녹이면 아주 작은 분말을 만들 수 있다. 이 분말을 이용해 다시 원하는 모양의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어낸다. 폐플라스틱 업사이클 기술은 3차원(3D) 프린터 기술과 만나면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폐플라스틱 분말을 3D 프린터로 뽑아내면 실과 같은 형태의 플라스틱 실을 얻을 수 있다. 용도에 따라 실의 색상이나 굵기·강도 등도 자유자재로 조절해 옷과 신발·가방 등을 만든다.
폐플라스틱 분말에 5% 정도의 폴리에스터를 섞으면 착용감도 기존 섬유 제품과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아직은 한정판이나 이벤트용으로만 생산되지만 대량생산 체제가 갖춰지면 가격 경쟁력도 충분할 전망이다. 아디다스는 내년에 폐플라스틱을 이용한 러닝화 100만 켤레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플라스틱은 아주 긴 사슬이 이어진 고분자 구조인데 분말을 만들거나 녹여도 이 고분자 사슬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재활용이 가능하다"면서 "재활용한 플라스틱은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다양한 첨가제 등이 개발되면서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빈곤층 구호용 주택 자재로 활용
폐플라스틱을 빈곤층 구호에 사용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국 하와이의 벤처 바이퓨전은 트럭에 싣고 다닐 수 있는 컨테이너형 폐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만들었다. 이 공장에서 바다나 땅에서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벽돌로 만들어 빈곤층용 집을 짓는 데 사용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기계에 투입하면 파쇄기가 플라스틱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쪼갠다. 이 플라스틱 조각을 보일러에서 데워진 뜨거운 물을 이용해 높은 압력으로 압축하면 '리플라스트'라는 이름의 벽돌이 만들어진다. 기존 플라스틱 공정과 달리 접착제나 첨가제가 필요 없다. 바이퓨전 측은 "콘크리트 벽돌을 제작할 때보다 95%가량 온실가스 발생이 줄어들고 단열·방음도 뛰어나다"면서 "쓰레기장으로 플라스틱을 옮기고 매립하는 비용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플라스틱으로 담을 쌓은 뒤 강철 봉으로 가운데를 뚫어 고정만 시키면 되기 때문에 별도의 고정용 시멘트도 필요 없다.
콜롬비아 보고타의 비영리 단체인 콘셉토스 플라스티코스도 버려진 플라스틱과 고무를 이용한 집 짓기 활동을 하고 있다. 콘셉토스 플라스티코스도 플라스틱과 고무를 분쇄해 건축용 자재를 만든다. 고무 성분 때문에 탄력이 있어 쉽게 건물을 짓고 뜯을 수 있다. 4명이 40㎡ 규모의 집을 짓는 데 5일이면 충분하고 비용도 5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콘셉토스 플라스티코스는 올해에만 콜롬비아와 브라질 등에 200채가 넘는 집을 지었고, 전 세계로 플라스틱 집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