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전투 현장, 적군과 200여m 거리를 두고 조우했다. 탄은 한정됐다. 이 순간 내 생명을 담보해주는 건 정확한 사격 기술이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정렬시키는 정조준 사격을 전장에서 실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땅의 울림으로 총을 들고 있는 손이 흔들리고, 긴장감으로 시선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조준이 안된 상황에서 쏘는 총은 허공을 가른다. 실제로 월남전에서 미군이 적 1명을 사살하는데 사용한 탄약은 2만발이 넘었다. 월남전 이후 미군을 비롯한 해외 각군은 조준 시간을 최소화하면서도 정확성을 얻을 수 있는 조준 장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도 스코프(Scope, 망원조준경)형태의 조준경은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저격수 등 일부에게만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스코프는 근거리 전투에 적합하지 않아 일반 소총에 달 수도 없었다.
대안으로 만들어진 게 도트사이트(Dot-Sight, 무배율광학조준경)다. 작은 액정화면에 들어오는 빨간 점에 표적만 일치시키면 된다. 1980년 이스라엘군을 시작으로 세계 각 군은 도트사이트를 표준 장비로 도입했다.
◆ 현대전의 필수품 ‘도트사이트’
기존 총기에 장착된 가늠쇠 형식의 기계식 조준기는 조준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 뿐 더러 정확도도 떨어진다. 게다가 넓은 시야 확보가 중요한 근접전에서 시야를 좁게 만든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조준 기구가 바로 도트사이트다. 타깃에 빛을 쏘는 ‘레이저사이트’(Laser-Sight)와 달리, 도트사이트는 장착된 유리판에 들어오는 불빛으로 조준한다. 정확히 견착하지 않아도 조준점이 총알이 맞을 곳을 가리키므로 조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레이저사이트는 낮에는 활용빈도가 떨어지고, 사격자의 위치를 노출시킨다는 약점이 있다.
영점을 한번 잡으면 사수가 누구이건 동일한 영점을 유지한다. 이 때문에 조준 시간이 빨라지는 것은 물론 양안 사격(두 눈을 뜨고 사격하는 것)이 가능해 주변 상황 파악도 쉽다. 군에 보급된 야간투시장비와 결합하면 야간에도 조준할 수 있다.
도트사이트와 스코프를 헷갈리기 쉽다. 스코프는 배율이 있는 렌즈 구조물로 작게는 2~4배, 많게는 몇십 배까지 확대해서 보는 장비다. 멀리 있는 목표를 정밀하게 조준하는 데 유용하다. 도트 사이트는 목표물을 확대하지는 않는다.
◆ 도트사이트 글로벌 강소기업 ‘동인광학’
동인광학은 도트사이트의 개발과 생산에서 국내 최고의 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도트사이트의 개념은 단순하지만 실제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안정성과 정확도가 중요한 군수용 제품은 한단계 높은 기술력을 요구받는다. 동인광학도 처음엔 민수용 제품만 만들었다.
1995년 설립 후 민수용 광학장비 생산에 주력하던 동인광학은 경험과 기술력을 쌓은 후, 2000년대 들어 군수용 도트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동인광학은 2004년에 군사용 도트사이트 T3 Series 출시를 시작으로 2007년에 특수작전용 도트사이트 ODL2, 2008년 기관총용 도트사이트인 DCL100, DCL110, DCL120, DCL401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매출(2015년 기준) 280억원의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동인광학은 매출의 75%를 해외에서 얻는다. 국내 매출은 전체의 25%에 그친다. 동인광학 관계자는 “현재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은 중기관총용(대구경) 도트사이트”라며 “이 제품은 세계 특허를 받아 타업체의 진입을 방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에서도 이 중기관총용 도트사이트를 정식으로 구매할 예정이다. 동인광학은 현재 NATO나 중동 국가들에도 도트사이트를 수출하고 있다.
동인광학은 2012년 10월 방위산업체로 지정돼 국군에 도트사이트를 보급하고 있다. 보급된 도트사이트는 현재 K2소총, K1A기관단총에 장착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K-4/K-6 기관총용 조준경 체계개발사업을 따냈다. 기관총용 조준경은 2017년부터 군에 보급될 예정이다.
◆3단계로 진행되는 도트사이트 공정.. 美 진출도 코 앞에
23일 오전 부천 원미구에 위치한 동인광학 본사를 찾았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동인광학 본사에선 1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도트사이트 제조 공정은 크게 ▲몸체 제작 ▲렌즈 제작 ▲조립 등 3단계로 나뉜다. 동인광학은 조준경에 들어가는 렌즈를 지하 1층 렌즈 가공실에서 제작한다.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센터링 작업 등이 모두 여기에서 진행된다.
생산한 렌즈는 모두 전수 조사를 거쳐야 한다. 동인광학 관계자는 “완벽한 조준경을 만들기 위해선 정확한 렌즈가 가장 기본”이라고 말했다.
지상 1층에 위치한 정밀부품가공실에선 조준경 몸체 공정이 진행된다. 9대의 머시닝센터(MCT)와 2대의 CNC 기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날 정밀부품가공실에선 대구경용 도드사이트 DCL100의 몸체를 만들고 있었다. 9대의 MCT를 12시간 계속 가동하면 최대 60대까지 만들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바디와 지하 1층에서 생산된 렌즈는 코팅 공정을 거친 후, 지상 3, 4층의 조립동으로 옮겨진다. 3층에선 국내 군납 제품을, 4층에선 수출용 제품을 조립한다. 모든 공정은 정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정밀 기술을 요구하는 광학 장비인 만큼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동인광학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트사이트는 다시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충격 테스트를 받는다. 전투현장에서 사용하는 장비인 만큼 내구성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사격 테스트를 대체하기 위한 사격 유사 충격 테스트가 눈에 띈다. 동인광학 관계자는 “총기를 엄격히 규제하는 국내에서 실사격 테스트를 하기엔 제한 사항이 많다”며 “실제 사격과 동일한 충격을 주는 장비를 개발해 대체 시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인광학은 미국에 생산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5년 전부터 미국에 지사를 두고 영업을 펼쳐온 데 이어, 생산라인을 만들어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공장 부지를 마련한 상태로, 미국과의 대구경 도트사이트 계약이 체결되면 생산라인을 갖출 예정이다.
◆ 끊임없는 ‘R&D’가 성공의 원동력.. “혁신을 두려워해선 안돼”
동인광학의 성공 원동력은 ‘혁신’에 있다. 정인 동인광학 대표는 “회사가 부침이 있었지만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매진했다”며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곳에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동인광학이 개발에 성공한 기관총용 도트사이트는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꼽힌다. 헬리콥터나 고속정 등에 거치된 기관총은 연사능력은 뛰어나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트사이트가 제시됐지만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다.
일단 개인화기에 비해 긴 사정거리를 시차(시각 오차)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안은 렌즈의 직경을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렌즈만 키울 경우, 왜곡과 렌즈의 내구성이 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동인광학은 렌즈 분야에서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총동원해 시차와 내구성 문제를 해결한 기관총용 도트사이트 개발에 성공했다.
동인광학의 또 다른 혁신성은 도트사이트와 레이저사이트를 결합한 ‘ODL2’시리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트사이트와 레이저 표적지시기는 따로 장착하지만 ODL2는 도트사이트 하나에 가시·비가시 레이저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레이저 표적지시기, 야간투시경과 겸용하는 비가시 레이저와 도트사이트 겸용 제품은 지난 1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높은 실전 효용성을 증명했다. 해외에서도 레이저와 도트사이트를 결합하는 시도는 일부 업체만 성공했다.
동인광학은 경통이 따로 없는 개방형 도트사이트를 만들어 무게와 부피를 크게 줄이고, 레이저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문제점을 해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ODL2A 조준경은 우리 군 특수부대 및 해외 파병부대에 공급돼 국방 일선에서 쓰이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동인광학의 혁신 사례는 많은 국내 업체가 보고 배워야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방위산업 현장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혁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라며 “기존의 방식만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팽배하다. 업체에서 아이디어를 내놔도 반영되지 않고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K2C1 소총 사례다. 방산업계에서는 피카티니레일을 채택한 K2C1 소총의 발열 가능성을 지적하며, 소총손잡이 장착을 제안했으나 군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실사용 부대에서 발열 문제를 제기해 소총 전량을 회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업체의 연구개발 과정에선 개선 요구사항이 많이 나온다. 이 중엔 단추 하나만 풀면 탁월하게 성능을 개량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면서 “작전요구성능(ROC)에 함몰되지 않고 ‘어떤게 더 국방에 도움이 되는가’를 따졌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