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중소기업 사장 A씨는 최근 골드바 10개를 사들였다. 1킬로그램(kg) 짜리 묵직한 골드바 1개의 가격은 약 5100만원. 그는 “올초만 해도 개당 5800만원이었는데 지금 5100만원선으로 12% 가량 단시간에 하락했다"면서 “싼 가격에 금을 매입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며 금값 하락 기조가 이어지자, 금 매입에 관심 갖는 고객들의 문의가 많이 늘고 있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한국금거래소 강남본점에 따르면. 이달 들어 매일 거래되는 골드바 물량은 60~70kg에 달한다. 금 거래소 관계자는 “금값이 떨어지고 있어 관심 있는 고객들이 많이 문의가 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연말 전후까지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값 바닥 부근… 저가 매수 기회 잡자”
골드바를 10개 이상 한 번에 사는 강남 부자들은 대부분 금값의 시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부분 수백억원대의 부동산 자산과 현금을 보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실물로 보유할 수 있는 금을 사는 것은 분산 투자가 목적이다.
하지만 이런 ‘큰손’들도 금을 이왕 사려면 금값이 내려가는 시기를 고른다. 윤석민 신한PWM 강남센터 팀장은 “부자들도 금값이 떨어질 때 많이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신동일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금 투자가 실물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에게 꾸준하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들이 달러 가격과 거의 반대로 움직이는 금을 보유함으로써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는 점과 금이 현금화가 쉽다는 점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신 부센터장은 “요즘 금값이 계속 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은행에서 판매하고 있는 골드바나 금적립통장도 인기를 끌고 있다.
KB국민은행에서는 이달 1일부터 지난 24일까지 골드바 8억6400만원어치(17.38kg)가 판매됐다. 이달 말이 되면 전달(8억9300만원)과 비슷한 수준까지 팔릴 전망이다. 올 하반기 6억~7억원 규모가 판매되던 골드바 판매량이 10월부터 다시 늘고 있는 셈이다.
신한은행이 그램(g) 단위로 통장에 금을 적립할 수 있도록 만든 금적립통장 ‘골드리슈’의 판매량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이달 23일까지 판매된 골드리슈 규모는 9774kg에 달했다. 이미 전달(9676kg) 판매량을 넘어섰다.
◆트럼프가 내린 금값…투자자들에게는 호재
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금값이 하락하면서 같은 돈으로 더 많은 금을 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다시 금값이 반등할 경우 시세차익을 바라는 투자자들이 몰릴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되는 국제 금값(12월 선물)은 지난 23일(현지시각) 1트로이온스당 1200달러 선이 붕괴되면서 1189.30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2월 10일 이후 처음으로 1200달러 이하로 금값이 내려갔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오는 12월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 경기가 살아나면 불확실성이 줄어들어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줄고 금값은 내려간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연말을 거쳐 내년 1분기(1~3월)까지는 금값이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1100달러 중반 선까지 금값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박승주 하나은행 서압구정골드클럽 센터장은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내 투자자들이 원자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면서 “특히 금의 경우 지속적인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부가세 등 거래 조건도 꼼꼼히 따져봐야
금 투자를 하는 경우 부가가치세 등에 대한 꼼꼼한 체크도 필요하다. 골드바 등 실물을 구매했을 경우 15.4%의 부가가치세를 내야하지만 금 적립통장을 이용하고 금을 실물로 인출하지 않으면 부가세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수료도 따져봐야 할 항목이다. 금 적립통장에서 금을 실물로 인출하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신한은행의 골드리슈 상품은 1kg이나 100g짜리 실물 금을 통장에서 인출하려면 4%, 10g짜리 금을 인출하려면 5%의 수수료를 내야한다. 수수료를 생각하면 되도록 많은 금을 모은 후에 한번에 실물로 바꾸는 게 유리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금 실물을 보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국제 금값에 따른 시세차익을 원한다면 통장으로 굴리는 것이 낫다”고 전했다.
직접 골드바를 매입할 땐 국제 공인된 제조업체가 만든 순도가 보증된 금실물인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국제 공인업체의 골드바는 현금화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각 지점을 통해 LS니꼬동제련이 제조한 골드바를 기준 가격에다 4~15%사이의 마진을 붙여 판매 대행하고 있다. 골드바 무게에 따라 마진율이 은행별로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어, 구입 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골드바 1kg를 기준으로 마진율은 KB국민·KEB하나은행이 4.9%다. 신한·NH농협은 이보다 조금 높은 5%의 마진을 받는다. 우리은행에선 1kg짜리 골드바는 살 수 없고 500g 골드바를 5%마진으로 매입할 수 있다.
경량의 골드바를 구입하려는 고객은 우리은행이 유리하다. 37.5g짜리에 대한 마진율은 신한은행이 8%지만 우리은행은 6%로 다소 차이가 있다. 10g짜리 골드바를 기준으로는 하나·국민·농협은행이 7%의 마진을 받는다.
이미나 신한은행 압구정갤러리아점 부지점장은 “금을 살 때는 단기 투자를 통한 이익을 노리기 보다는 10~20년 정도 가지고 가는 장기 투자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