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자주 걸리는 질병의 유전적 원인을 보다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는 한국인 표준 게놈(유전체) 지도가 나왔다. 한국인 암 환자의 유전체 정보와 이 게놈 지도를 비교하면 변이가 생긴 유전자를 파악할 수 있어 정밀한 치료가 가능해진다.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 연구팀은 한국인 41명의 게놈을 통합 분석한 한국인 표준 게놈지도 ‘코레프(KOREF, KORean REFerence)’를 구축하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24일자에 발표했다. 코레프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의 표준 게놈지도로 등록돼 병원이나 제약사 질병 연구나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생명체는 수많은 세포로 이뤄져 있고 세포에는 모두 핵이 있다. 핵 안에 있는 염색체에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DNA가 있는데, 사람의 유전 정보를 담은 DNA는 모두 30억개의 염기로 구성된다. 염기의 배열 순서를 말하는 염기서열에 따라 단백질이 만들어지는데 게놈 지도는 DNA에 포함된 30억개 염기의 서열을 밝힌 것이다.
표준 게놈 지도를 만들면 특정 질환이 있는 환자의 게놈과 비교해 염기서열이 다른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 염기서열이 달라져 변이를 일으킨 단백질을 밝혀내 질병 원인이나 약물의 효능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인간 표준 게놈 지도는 백인의 유전체를 분석한 것이어서 인종별 특징을 담지 못했다. 2009년 중국에서 중국인 1명과 흑인 1명의 게놈 지도 초안을 발표했지만 완성도와 정확도가 떨어져 활용하기 어려웠다.
박종화 소장 연구팀은 한국인 41명의 게놈을 이용해 한국인 표준 게놈 지도인 코레프를 처음으로 완성했다. 연구팀은 먼저 한국인 1명을 대상으로 30억 개의 염기서열을 정밀하게 분석한 게놈 지도를 만들었다. 그런 뒤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3년 당시 활용 가능했던 한국인 40명의 유전체 데이터에서 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DNA 염기서열의 차이(SNP)를 뽑아내 미리 만들어 둔 1명의 정밀 게놈 지도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한국인에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DNA 염기서열을 분석, 표준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특히 코레프는 이미 공개된 9개의 서로 다른 인간 표준 게놈지도와 정밀하게 비교, 분석됐다. 표준 게놈을 서로 비교하면 기존에 알 수 없던 인종간, 민족간 게놈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미국인에게는 나타나지만 한국인에게는 발견할 수 없는 염기서열 차이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논문의 제1 저자인 조윤성 UNIST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연구원은 “코레프는 한국인 41명의 게놈 정보를 통합해 공통 게놈 서열을 융합하는 새로운 기법으로 제작됐다”며 “세계 처음으로 인구집단을 대표하는 표준 게놈지도를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와 바이오기업 마크로젠도 한국인 정밀 게놈 지도를 완성해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바 있다. 이는 30대 남성 1명의 정밀한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41명의 게놈을 통합 분석해 표준 게놈 지도를 만든 이번 연구와는 차이가 있다.
연구팀이 완성한 코레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 1명의 30억 개의 염기서열 중 유전체가 변이된 부분은 약 300만 개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백인 중심의 표준 게놈 지도를 기준으로 분석했을 때 나타난 400만 개보다 100만 개나 줄어든 것이다. 100만 개의 게놈은 인종 차이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암이나 유전질환이 발생했을 때 분석해야 할 게놈의 숫자가 그만큼 줄어 질병 원인 분석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인이 특정 암에 걸렸을 때 기존에는 400만 개의 게놈을 분석해야 했지만 코레프를 활용하면 300만 개의 게놈만 집중 분석하면 된다.
이번 연구는 2006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 주도로 시작됐지만 본격화한 것은 2013년부터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Next-Generation Sequencing)’ 기술이 2010년대에 나왔기 때문이다. 또 이번 연구는 게놈연구재단과 미국 하버드대, UNIST 등 많은 기관의 국제협력을 통해 진행됐다.
박종화 교수는 “2003년 완성된 기존 인간 표준 게놈지도는 13년간 3조원의 연구비가 투입됐지만 이번 연구에 투입된 연구비는 약 20억 원으로, 가격 대비 정확도가 가장 높다”며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질병의 유전적 원인을 보다 쉽게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