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일관된 흐름이었다.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서부터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각 국가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까지 자유무역은 범위와 강도를 키워왔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이같은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흐름은 반발에 부딪쳤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 현상은 세계화 반대, 이민 반대, 선진국 중하위층의 반발, 전통 제조업 부활 희망 등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계화는 정말 잘못된 것일까. ‘자유무역은 거래하는 양쪽을 모두 이롭게 한다’는 경제학적 논리가 틀린 것일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세계화로 인해 세계 전체적인 불평등 수준은 낮아졌다.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선진국과의 격차가 줄어든 영향이다.

그러나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한 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됐다. 세계화는 상품, 자본, 노동 등의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한다. 세계가 거의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이다. 이 커다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사람은 이전보다 훨씬 큰 과실을 얻으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그 반대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는 올해 3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1차 세계화 시대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세계화와 기술혁신에 의한 혁신경제(철도, 자동차, 전화, 전구 등)가 급부상했다. 당시에 ‘구체제의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농민이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계급이되,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로드릭 교수에 따르면, 당시에도 주류 정치인들은 세계적인 경제 결속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사회 개혁과 민족(national) 정체성에 대한 요구를 대단치 않게 생각했다. 이는 두 가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사회 개혁에 대한 요구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민족 정체성에 대한 요구는 파시즘으로. 두 가지 모두 ‘세계화’를 ‘경제적 단절’로 후퇴시켰다. 물론 결과적으로 전보다 더 나빠졌다. 당시의 문제는 국가가 재정지출로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 개념을 도입하면서 해결됐다.

지금 상황을 보면 아직까지는 괜찮다. 민주주의가 발전했고 고용보험, 연금 등 사회안전망도 구축돼 있다. 세계적인 경제문제를 조절할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경제기구도 있다.

그러나 글머리에서 언급했듯이, 세계화는 대도시에 주로 거주하는 코스모폴리탄, 전문직 등 능력 있는 집단과 나머지 집단 사이의 격차를 확대시켰다. 지금 현실은 1차 세계화 때와 거의 비슷하다. 세계화의 피해집단인 농민들은 제조업에 종사했던 비숙련 백인 남성들과 대비된다. 사회 개혁에 대한 요구였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처럼 빈부 격차를 강조하는 좌파 포퓰리즘으로, 민족 정체성에 대한 요구였던 파시즘은 트럼프처럼 국가, 인종, 종교를 강조하는 우파 포퓰리즘으로 대칭을 이룬다.

두 가지 모두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릴 뿐이지, 근본문제인 저성장과 양극화 심화를 해결할 수 없다.

세계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세계화가 없었다면 미국 중하위층도 그렇게 값싼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할 수 없다. 중국 인도 베트남 등과 같은 개발도상국들이 그렇게 빨리 경제발전을 이루지도 못했을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 우리나라와 같은 후진국이 투자할 자금이 없어 이 나라, 저 나라에 차관(借款)을 빌리러 다녔던 때를 생각해 보라. 세계화로 인해 낮은 임금, 투명한 법과 제도, 넓은 시장 등 여건만 갖춰지면 자본은 서로 투자하려고 안달이 나 있다.

로드릭 교수는 “역사적 교훈은 첫째, 광란으로 질주하는 세계화의 위험 그리고 둘째로 뉴딜정책, 복지국가, (브레튼우즈 체제의) 조심스러운 세계화 등을 도입한 자본주의의 유연성(적응능력)이다. 온건한 정치인들이여, 명심하라”라고 글을 끝맺었다.

세계화가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나 신흥 개발도상국에는 큰 혜택을 주는 게 분명하지만, 브렉시트나 트럼프 현상에 나타난 선진국 중하위층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세계화는 지속하기 어렵다. 세계화의 이익을 누리는 집단에 세금을 왕창 부과해 저소득층에게 퍼주는 방향으로 자본주의가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나. 아니면 미국 영국 등 서방 선진국을 빼고 나머지 국가들끼리 세계화를 해야 하나. 서방 선진국도 세계화의 이점을 포기하기 어려울텐데…어쨌든 세계화의 위기다.

[데스크칼럼] 아! 트럼프① 대중민주주의의 위기 <2016.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