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LG화학과 삼성SDI의 배터리 사업 실적을 좌우할 중국 배터리 인증이 계속 지연되는 데다 신재생에너지에 회의적인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사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 美 트럼프 당선으로 전기차 산업 위축될까…보호무역 강화도 우려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해온 친환경 정책을 등에 업고 성장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에 친환경 정책 및 관련 혜택을 철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석탄 광산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기존의 화석에너지 개발을 장려하겠다고 했다. 전기차 성장에 '급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캐스린 톰슨 전 연방항공청 수석 변호사는 “화석 연료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이 바뀐다면 전기차에 주는 세제 감면이나 보조금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보호무역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악재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기존에 맺은 자유무역 관련 협정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며 이들 협정을 폐기하거나 재협상하겠다고 했다. 당장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미국산 제품 사용을 독려하는 정책이 나오면 한국 부품 등에 대한 통상압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中 배터리 인증 지지부진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시장에서도 삼성SDI와 LG화학은 발목이 잡혀있다. 이들 업체는 지난 6월 제4차 전기차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업체에서 탈락한 이후 5차 심사를 재신청했다. 그러나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내 심사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정부의 배터리 인증을 받지 못하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중국 산시성 시안에 있는 삼성SDI(사진 위)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과 한국 오창에 있는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각 회사의 직원이 생산된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호영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18일 열린 LG화학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IR)에서 "5차 인증을 기대대로 받게되면 매출 성장률은 60%대로 예상된다”면서도 “인증 불발시엔 성장률이 30% 수준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은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 진출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5차 모범규준 심사 결과 발표 이후 상황을 고려해 시장 진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이런 대외 악재에 버틸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LG화학은 올해 3분기 전지 부문에서 14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전지 부문에서 3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삼성SDI 역시 같은 기간 중국에서 전기차용 원형배터리의 판매가 감소하면서 110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코트라는 "현 시점에서 단기적인 수익보다는 지재권 등 특허권 확보, 전기차 완성차 업체와의 전략·협력관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