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 박모(38)씨는 9일 오후 보유하고 있던 미화 20만달러 중 절반을 1150원에 팔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깜짝 당선되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상승(원화가치 하락)했기 때문이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4.5원 오른 1149.5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박씨는 지난 9월 20만달러를 1090원에 샀었다.
박씨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90원이었을 당시 사뒀던 10만달러를 팔았으니 앉은 자리에서 두 달만에 600만원(수수료 제외 전)의 환차익을 올린 셈”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당분간 글로벌 금융시장은 극심한 변동을 보일 전망이다. 그동안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를 예측하며 움직였던 금융시장은 뒤늦게 트럼프 당선의 영향이 반영되면서 요동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책 불확실성 고조로 주가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달러는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투자 포트폴리오를 달러나 금 등 안전자산 위주로 가져갈 것을 제안했다.
윤석민 신한PWM강남센터 팀장은 “시장에 불확실성이 생긴 만큼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의 옮겨가는 흐름이 당분간 불가피하다”면서 “당분간 시장 분위기를 관망하면서 어떤 식으로 투자를 해야할지 트럼프의 행보 등 상황을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금 등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큰손들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45)씨는 주식에 들어가 있는 자금 중 20% 정도를 빼 달러와 금에 분산 투자할 계획이다. 이씨는 “원 달러 환율이 1120~1130원 정도로 조정받을 때를 노려 10%를 담고, 나머지는 단기적으로 금에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씨처럼 금을 담으려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9일 KRX 금 시장에서 금 가격은 전날보다 4% 가량 오른 4만893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하루에만 금은 118.3㎏ 거래되며 KRX 금 시장 개장 이후 두번째로 많은 거래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 주요 금융기관들은 금값이 당분간 상승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들 기관은 현재 온스당 1300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12월물 금 가격이 1400달러(씨티그룹)에서 최대 1850달러(ABN암로)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HSBC는 “트럼프의 보호 무역주의 정책이 글로벌 무역 분쟁과 이에 따른 각국의 경쟁적 통화 절차를 유발해 금값을 밀어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식 투자는 잠시 보류… “코스피 1900선 깨질 수도”
주식 투자를 준비하는 투자자라면 잠시 미루는 것이 좋다. ‘트럼프 쇼크’에 직격탄을 받은 투자처가 바로 주식 시장이다. 9일 주요 아시아 증시는 미국 대선 개표 상황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트럼프의 승리가 굳어지자 하락세로 치달았다.
한국 코스피지수는 2.25% 떨어진 1958.38, 코스닥지수는 3.92% 내린 599.74로 각각 거래를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날보다 5.36% 하락한 1만6251.54로 거래를 마쳤다. 닛케이지수는 상승 출발했지만 클린턴 후보의 패색이 짙어지자 오후 2시 9분 6.17%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홍콩 항성지수는 1.95% 하락한 2만2462.80에, 항성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는 2.77% 내린 9391.89에 장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으로 시장이 불안이 커지면서 당분간 주가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코스피지수 1900선이 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성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쇼크는 당분간 지속되면서 코스피지수가 1900선까지 하락한 뒤 저점에서 박스권이 형성되는 양상이 지속될 수 있다”며 “지난 6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때처럼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가 곧바로 반등하는 움직임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상장지수펀드(ETF)에는 돈이 몰렸다. 9일 코스피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KODEX 인버스 ETF는 7293만3329주가 거래됐다. 전날(756만7833)보다 10배, 최근 1개월 평균 거래량(1157만9625주)보다 6배나 많은 규모다.
시장이 급락 후 급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ETF 투자도 늘었다. 이날 하루 삼성자산운용의 KODEX레버리지 ETF의 거래량은 9174만4435주에 달했다. 이는 최근 한 달 동안의 일평균 거래량 1666만여주보다 5.51배나 많은 규모다. KODEX레버리지는 코스피지수 상승분의 2배 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ETF다.
◆방망이는 짧게…“3개월짜리 전단채·CMA에 자금 쟁여두고 주식 매수기회 봐야”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트럼프발(發) 불확실성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다. 전문가 상당수는 브렉시트 때와 마찬가지로 위험자산이 단기적으로 하락하겠지만,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철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PB 센터장은 “일단은 달러나 채권 등 비교적 안전한 자산으로 돈을 굴리며 수익을 실현하고, 이후 살 만한 주식의 저가 매수 기회를 볼 것”을 권했다.
신동일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부센터장도 “연말 미국의 금리 인상도 예고돼 있는 만큼 정기예금 금리 플러스 알파를 챙길 수 있는 CMA(종합자산관리계좌)나 3개월 또는 6개월 만기의 전자단기사채(전단채)에 자금을 쟁여두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