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한국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시 사내 파벌주의, 인사 형평성 불만, 의사 결정 비효율화 등의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는 내용의 컨설팅 용역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세계 증권거래소들이 지주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지주사 체제로 전환시 다양한 이점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해당 보고서엔 지주사 전환에 대한 장단점이 상세히 설명돼 있어 일각에서 제기한 맥킨지가 지주사 전환에 부정적인 내용을 보고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번 맥킨지 보고서를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어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 관련법의 처리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맥킨지 비공개 용역보고서 발표…“거래소 지주사 전환시 조세 절감 등 이점도 존재”

조선비즈가 31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무위)으로부터 입수한 맥킨지 비공개 용역자료에 따르면 맥킨지는 ‘거버넌스 조직체계 변경간 발생가능한 잠재적 리스크 및 대응방안’이라는 내용을 통해 거래소가 지주사로 전환했을 때의 장단점을 보고했다.

거래소는 ‘한국거래소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 방향성 수립’이라는 제목의 비공개 입찰 용역을 발주해 지난 17일 최종 용역보고서를 제출받았다. 맥킨지는 베인앤컴퍼니, 보스턴컨설팅그룹과 함께 세계 3대 글로벌 컨설팅 회사로 꼽힌다. 해당 보고서는 일부 내용만 공개됐을 뿐 실제 이 보고서가 외부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해당 보고서는 거래소가 향후 신사업 발굴을 위해 용역을 의뢰한 것이다. 최경수 전 이사장 때 발주했으며, 용역 비용은 10억원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거래소는 해당 보고서 안에 지주사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담기길 원했지만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맥킨지가 거래소 지주사 전환과 관련한 명확한 해답을 내놓진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맥킨지는 보고서에서 다른 나라들이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한 사례들을 나열하고 다양한 이점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맥킨지가 이점으로 제시한 사항은 ▲국가별 규제대상 법인 구분 ▲외부업체 인수 및 조인트벤처 추진 ▲사업부문별 파산 관리 ▲조세 절감 등이다.

사업영역별로 법인을 분리하면 국가별 규제 당국에 대한 별도 대응이 가능하고, 기업과 합작회사를 만들 때도 모기업에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파산 가능성이 있는 사업 영역을 떼내 별도로 법인을 분리하면 파산시에도 모기업에 대한 재무적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홍콩거래소(HKEX)의 옵션 전문 청산회사가 대표적인 예다.

또 룩셈부르크 등 조세피난처를 통해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설립하면 별도로 매출이나 순익을 인식해 조세를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장점으로 보고됐다.

◆ 지주사 전환 후 경영관리 원펌 운영시 리스크 있어…“사내 파벌주의, 의사결정 비효율화”

맥킨지는 독일 증권거래소인 도이체뵈르제(Deutsche Boerse AG) 탐방을 통한 전략도 제시했다. 도이체뵈르제는 거래소를 지주사로 전환했지만 경영관리상에선 법인 구분과 무관하게 ‘One-firm’(한 회사) 형태의 운영을 추구하고 있다.

맥킨지는 거래소가 지주사 전환시 총 5가지 관점에서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전사 관점에서 관리 복잡도 증가 ▲조직간 장벽과 이기주의 형성에 따른 의사소통 저하 ▲이해상충으로 인한 의사 결정 비효율화 ▲인사 형평성에 대한 불만 발생 ▲사내 파벌주의 심화 등이다.

사업 부문별로 법인을 구분하면 법인별 예산과 인력 편성, 성과 관리 상의 복잡도가 증가할 수 있고 소수 파벌에 의한 지주회사 내 주요 보직 독식시 전사적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법인별로 손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중첩 사업 영역에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사업 부문간 이기주의가 생기면서 의사결정 지연과 잠재적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맥킨지는 분석했다.

또 상대적으로 선호조직인 유가증권시장과 반대로 적자사업 조직인 코스닥시장 등 계열사별 선호도 차이가 발생해 내부에서 불만이 커지고 인사 형평성에 따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선 전사차원의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고, 지주 인사팀을 통한 중앙집중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 금융위, 20대 정무위 법안심사 앞두고 지주사법 통과 총력

이번 맥킨지 용역 결과를 놓고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정무위 법안심사 과정에서 논쟁의 여지가 생겼다.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거래소에 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해 현재 거래소 내 개별 사업 부문으로 운영되고 있는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파생상품시장을 지주회사 내 자회사로 분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회사끼리 경쟁 구도를 만들고, 지주회사가 되는 거래소를 추후 상장하겠다는 것이 법안의 뼈대다.

하지만 이 법은 거래소 지주회사의 본점을 사실상 부산광역시에 두도록 명시하고 있어 여야간 지루한 다툼이 계속돼 왔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여야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자동폐기 됐다가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됐다.

이진복 정무위원장이 지난 7월 재발의한 개정안에서도 부칙 제2조 4항에 “거래소지주회사의 본점을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금융중심지로서 파생상품시장 등 자본시장에 특화된 지역에 둔다”고 명시했다. 현재 금융중심지법이 정한 특화 금융중심지는 ‘부산’ 한곳 뿐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내달초 20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가 열리는만큼 지주사법 통과 의지가 어느때보다 강한 상황이다. 임 위원장은 지난 24일 자본시장 유관기관장과 임직원들을 긴급 소집해 거래소 지주사법 통과를 위한 비상 전략회의를 가졌다.

거래소 관계자는 “맥킨지에 의뢰한 컨설팅 내용은 비공개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사업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와관련 박용진 의원은 “맥킨지 보고서를 통해 거래소 지주사 전환문제는 국회 뿐 아니라 외부에서 볼때도 부적절한 것으로 검증됐다"며 “거래소가 이번에 지적된 잠재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방안을 명확히 해야 의혹이 해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