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청담동에 있는 이탈리아 고급 잡화 브랜드 폰타나 밀라노1915 매장. 바깥에는'中國顧客打9折(중국 고객 10% 할인)'라고 쓴 중국어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폰타나 밀라노는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MCM 등 국내·외 명품 브랜드가 밀집한 청담 거리에 지난달 170㎡ 규모로 아시아 지역 첫 매장을 열었다. 이탈리아 가죽 공방을 재현한 듯한 매장 안에선 중국인 손님 2~3명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진열된 가죽과 색상 견본을 훑어보고 있었다. 한 중국인 고객이 "이 브랜드 유명한가요?"라고 묻자 매장 직원은 중국어로 "뉴욕 맨해튼 바니스백화점에 입점했고, 유럽과 아랍 왕실의 고객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이내 진열됐던 수백만원대 가방 4개를 한꺼번에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폰타나 밀라노’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 폰타나 밀라노는 아시아 지역 첫번째 대표 매장을 한국에 내면서 다른 지역으로까지 시장을 넓힐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폰타나 밀라노뿐 아니다.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을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테스트 베드(실험 무대)'로 주목하면서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를 잇따라 한국에 열고 있다. 한국 무대를 발판 삼아 세계 명품 업계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 고객들 마음을 선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올 들어 지난 5개월간 서울 청담동과 압구정동 등 강남 지역과 스타필드 하남 등에 신규 '대표 매장'을 연 명품 업체가 6곳에 이른다.

한국 매장 내며 "한·중·일 동시 겨냥"

'요가복계 샤넬'로 불리는 캐나다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도 지난 5월 서울 신사동에 플래그십스토어를 내고 아시아에 처음 진출했다. 룰루레몬은 지난해부터 한국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면서 해외 직구(직접 구매) 열풍을 불러온 제품이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안토니오 마나스도 최근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안에 아시아 1호 매장을 냈다.

김지은 롯데백화점 해외패션부문장은 "최근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명품 브랜드 담당자를 만나보면 한국을 아시아 첫 진출지로 고려하는 곳이 많다"며 "'K뷰티' 'K팝' 등 한류 문화가 세계적으로 눈길을 끌면서 한국에 매장을 내면 중국 고객까지도 흡수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국이 시진핑 주석 체제 이후 대대적인 부패 척결을 내세우면서 명품 소비가 위축된 점도 상대적으로 한국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여파로 이웃 홍콩에서도 명품 소비가 가라앉았고,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가 발간한 '세계 명품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명품 매출은 전년보다 2% 감소한 179억유로(약 23조원)로 집계됐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명품 선망을 버린 건 아니다. 이들은 한국 등 해외로 나가 명품을 사들이고 있다.

'아시아 최초·최대' 내세워 판촉

명품족들 관심이 몰리면서 '중국·일본에 없는 한국 한정판'을 내세워 고객들을 손짓하는 곳도 생겼다. '유모차계 벤츠'로 불리는 유아용품 브랜드 스토케는 지난 9월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고 신형 유모차를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안톤 반 드 푸테 스토케 최고경영자(CEO)는 "한류의 파급력을 감안했을 때 한국에서 첫 제품을 내놓는 게 아시아 시장 전체로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명품 브랜드 할리데이비슨이 운영하는 패션업체 할리데이비슨 라이프스타일은 지난 5월 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에 자사 브랜드로는 세계 최대 규모(231㎡)인 매장을 열고, 한국에서만 살 수 있는 의류·액세서리 제품을 전체 중 40%까지 구성해 차별화에 나섰다. 이유리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세계 명품 업계가 경기 침체로 고전하는 가운데 아시아 시장에서는 그 돌파구로 한국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