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고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정부는 재고 관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추수 이후 정부 창고의 쌀 재고량은 175만t(8월 말 기준)에서 200만t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5일 밝혔다. 쌀 재고량이 200만t이 넘는 건 1990년 이후 처음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우리나라에 권고한 적정 비축량(72만t)의 3배에 육박한다. 정부는 양곡 창고도 작년 3900곳에서 올해 4100곳으로 늘렸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재고 쌀 10만t을 보관하는 데 연간 316억원이 든다고 추정한다. 200만t 보관에 연 6320억원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농민들 원성을 달래느라 과다 생산된 쌀을 수매해주면서 비싼 보관 비용을 물고 있지만 창고에 잠들어 있는 쌀의 용처(用處)가 마땅치 않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재고 쌀은 쌀이 부족한 경우가 아니면 시장에 밥쌀로 공급되지 않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 보관미는 보통 군(軍)이나 교도소, 저소득층 지원 등에 쓰인다"며 "하지만 군인이 줄어드는 데다 저소득층조차 정부미 받는 걸 꺼리고 있다"고 했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식품 가공용, 사료용, 주정용도 수요를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 올해 처음으로 2012년도 쌀 일부를 사료용으로 공급하자 일부 농민 사이에서 "힘들게 지은 농사를 소·돼지에게 주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일각에선 지난 2일 "인도적 차원의 대북 쌀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주장처럼 대북 쌀 지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북핵 사태로 남북 관계가 경색된 마당에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매년 쌀 과잉으로 홍역을 치르는데도 농촌 현장에서는 벼농사를 줄이고 다른 작물 재배를 늘리는 '구조 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쌀 직불금과 과다 생산량에 대한 정부의 추가 수매에 의존하는 게 주된 이유지만 자동화된 벼농사가 편리해 고령 농가가 선호하는 측면도 있다. 벼농사 기계화율은 1986년 42%, 1990년 68%에서 2014년 98%로 높아졌다. 밭작물의 기계화율은 56% 수준에 불과하다. 벼농사의 경우 직불금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지만 콩, 고추 등 밭작물은 재배하다가 손실이 발생하면 부담을 재배 농민이 떠안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