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내년 4월 출범을 앞둔 세계 최대 해운 얼라이언스 ‘2M’에 가입할 수 있을지 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상선과 2M 소속의 머스크, MSC는 지난 7월 양해각서(MOU) 수준에서 얼라이언스 가입에 합의했지만 양해각서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언제든지 합의를 깰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머스크, MSC가 직접 미주 노선에 선박을 투입할 수 있게 되면서 협상 테이블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이 2M 얼라이언스에 합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5일 싱가포르 해운업계 관계자는 “MSC가 현대상선에 ‘앞으로 2M과의 협력은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캐롤라인 벡쿼트 MSC 수석부사장의 외신 인터뷰 내용이 전해지면서 우려는 증폭됐다. 벡쿼트 수석부사장은 지난달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를 통해 “현대상선의 2M 가입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며 “MOU는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를 가진 서류(paper)일 뿐이고,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이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 관계자는 “MSC로부터 공문을 받은 바 없고, 2M과 원만하게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운업계 치킨게임이 계속되면서 말도 안 되는 여러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했다.
현대상선은 최근 머스크, MSC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항로 운영계획, 선사별 선복 사용방안, 경쟁력 확보방안 등 세부 사항을 두고 협의 중이다. 10월말까지 운영약정서(OA)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가 OA를 승인하는데 최대 150일이 소요되는 만큼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한다.
현대상선이 얼라이언스에 가입하지 못하게 되면 영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컨테이너 선사는 얼라이언스를 통해 운임을 낮추고, 서비스를 강화해 영업 활동을 벌인다. 세계 해운업계는 주요 얼라이언스 3~4곳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가입에 실패할 경우 업계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미주노선 상황 급변…여론몰이라는 분석도
해운업계에선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머스크와 MSC의 태도가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머스크와 MSC는 당초 미주노선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현대상선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미주노선에 공백이 생기자 현대상선과 협력하기보다 직접 선박을 투입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와 MSC는 지난달 15일부터 부산에서 출발하는 미주 노선 서비스를 신설하고 각각 선박을 투입했다. 두 업체가 미주노선에 선박을 투입한 이후 현대상선이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정부는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선적되지 못한 짐들이 늘어나자 물류대란 해소를 위해 머스크, MSC 등 해외 선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머스크와 MSC가 현대상선과의 노선 운영 계획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여론몰이에 나선 것으로 해석한다. 경쟁업체들이 현대상선의 화주를 뺏어 오기 위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동현 평택대 물류학과 교수는 “머스크나 MSC 입장에서 한진해운 물류대란 이후 현대상선의 매력이 떨어진 것은 맞지만, 아예 가치가 없어졌다고 보긴 어렵다”며 “해운업계는 포커판과 같아서 업체들이 협상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많은 거짓정보를 흘리기도 한다”고 했다.
◆ ‘디얼라이언스’와 협상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현대상선이 머스크, MSC와의 협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제3의 해운 얼라이언스인 디 얼라이언스와 가입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상선은 이미 디 얼라이언스와 물밑 접촉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지만 현대상선 관계자는 “디 얼라이언스와 협상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부인했다.
현대상선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부 석좌교수는 “현대상선의 2M 가입은 세계적인 선사 사이에 끼어든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실속이 없다”며 “유창근 사장에게 지금이라도 2M에서 나와 디 얼라이언스와 협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머스크, MSC와의 선복량 차이가 크기 때문에 2M에서는 현대상선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규모가 비슷한 디 얼라이언스에서 활동하는 것이 현대상선에 유리하다”고 했다.
세계 1‧2위 선사 머스크, MSC는 각각 317만7089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280만1079TEU의 선복량을 가지고 있다. 세계 13위 현대상선의 선복량은 45만3612TEU로 머스크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디 얼라이언스에 소속된 하팍로이드(93만TEU), 양밍(56만TEU), MOL(52만TEU), NYK(51만TEU), K라인(35만TEU)은 현대상선과 규모 차이가 크지 않다. 디 얼라이언스 회원사들은 현재 현대상선과 함께 ‘G6'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서는 현대상선이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디 얼라이언스 소속 해운업체들이 새로운 동맹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현대상선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선사 NYK의 반대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머스크, MSC가 시간을 끌다가 협상을 일방적으로 끝내버리면 손 쓸 방법이 없다”며 “일부 해운업체들이 반발하고 있고, 내년 4월 출범까지 시간이 촉박해 다른 얼라이언스 가입도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