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대법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 보험금은 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지만 금융감독원은 “보험업법 위반으로 행정 제재를 가할 것"이라면서 보험업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5일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보험의 주계약(일반사망보장)에는 ‘계약의 책임 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 자살한 경우에는 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이 있다”면서 “약관에 따라 지급되어야 하는데 미지급된 자살 보험금은 없는지 현장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계약에서 자살을 재해사망으로 보장하는 보험 계약까지 합치면 미지급 자살 보험금의 규모가 더 불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보험사들이 지급하지 않은 자살보험금은 당초 금감원에 보고된 액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소멸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최대한 버티면서 보험금을 지급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료=민병두 의원실

◆ 금감원, 삼성·교보 이어 한화·알리안츠·동부 현장검사 중

금감원은 삼성생명, 교보생명에 대한 현장검사를 마친 후 한화생명, 알리안츠생명, 동부생명에도 자살보험금과 관련한 현장검사를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동부생명만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인 지난 달 27일 “소멸시효에 관계없이 미지급한 자살보험금 140여억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업체들은 줄곧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었다.

금감원에 보고된 삼성, 교보 등 7개 생보사의 미지급 재해사망특약 자살보험금 규모는 지난 5월 12일 기준 1377억원, 건수로는 1903건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주계약에 의한 자살보험금까지 합치면 규모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올 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재해사망보험금으로 지급해야할 금액은 각각 1585억원, 1134억원 수준이다. 기존에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이 금감원에 보고했던 686억원, 282억원보다 각각 2배, 4배 늘어났다. 업계에 따르면 이 금액은 금감원의 주계약 전수조사 이후 파악된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조선일보 DB

◆ 자살보험금 지급 압박 이어가겠다는 금감원

대법원은 올 들어 두 차례 자살보험금 판결을 내리면서 보험금을 약관대로 주기는 하되(올해 5월)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은 주지 않아도 된다(지난달 30일)는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은 그러나 소멸시효 완성과 관계 없이 생보사들이 미지급한 자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에 시간을 끌어 소멸시효가 지난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보험업법 위반 사항을 검토해봐야한다는 것이다.

생보사들은 ‘배임죄’의 우려가 있다며 금감원 압박에 항변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미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 건에는 보험금을 지급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이를 어기는 것은 회사에 손실을 입히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도 자살보험금 이슈에 가세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보험금에 소멸시효 특례를 적용하는 '재해사망보험금 청구기간 연장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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