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경주에서 일어난 규모 5.8의 강진(强震)은 한반도 위치까지 바꿨다. 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은 이번 지진으로 한반도 좌표가 최대 동쪽 1.4㎝, 남쪽 1㎝ 이동했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믿음까지 송두리째 흔들었다. 기상청은 한반도에서 규모 6.0 초반대의 지진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질학계에서는 최대 규모 6.5~7.0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상 실험에서 서울에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하면 수도권에서 66만5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건물 93만 동이 파손·붕괴된다고 나왔다.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고윤화 기상청장은 13일 국회에서 "앞으로 규모 5.8에서 6.0 이상, 심지어 6.0 초반을 넘어가는 지진까지는 언제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기상청장이 지진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선 것은 올해 들어서만 국내에서 52차례의 지진이 발생한 데다, 역대 가장 강한 지진 9개 중 4개가 최근 2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진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선창국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 지진재해연구실장도 "이론적으로는 한반도 내륙과 인근 해역 어디에서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지금으로써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강진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이웃 일본에서 일어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지난 4월 구마모토 대지진 등이 한국의 지각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인공 지진의 위험성도 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발생한 인공 지진이 백두산 화산 폭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미국·영국·북한 공동 연구진은 백두산 지하에 엄청난 양의 마그마가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활화산(活火山)이라는 것이다.

홍태경 교수는 지난 2월 발표한 논문에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백두산 간의 거리는 116㎞ 정도인데, 이는 중규모 이상의 지진이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리"라고 밝혔다. 홍 교수는 리히터 규모 7.0 정도의 지진이면 백두산 폭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지난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은 규모 5.04의 인공 지진을 일으켰다.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도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 48시간 이내에 전남 일부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이 화산재의 영향권이 될 것"이라며 "남한에서만 최대 11조19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지질조사조차 거의 안 돼

가장 시급한 일은 지질조사이다. 지진은 지하 깊은 곳에서 단층(斷層)의 움직임 때문에 발생한다. 이번 지진은 경주 일대를 가로지르는 양산단층대에서 일어났다. 어느 곳에서 지진이 발생할지 파악하려면 단층을 확인하기 위한 대규모 지질 조사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선창국 실장은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을 이유로 일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인 지질 조사가 진행됐다"면서 "지질조사를 수행할 전문 인력이나 예산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지진 연구자는 "현재 전국적으로 10~20% 정도의 단층만 파악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 연구와 함께 건물이 지진에 견디도록 내진(耐震) 설계를 적용하는 등 대비책도 필요하다. 유영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도시연구소장은 "우리나라는 현재 내진 설계가 의무화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까다로운 내진 설계 기준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윤수 지질연 책임연구원은 "특히 부산이나 인천 송도, 서울 석촌호수 일대처럼 매립지에 세운 건물은 특히 내진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매립지는 주로 토양층으로 이뤄져 지진이 일어나면 지하수와 토양이 섞이면서 진 반죽 상태가 돼 바로 위 건물들이 무너지기 쉽다. 1995년 일본 고베 지진 당시 피해가 컸던 것도 도심이 바다를 흙으로 메운 곳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