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오후 2시, 베트남 하노이 호안끼엠 하이바트룽로(St. Hai Ba Trung)에 있는 미디어마트(MediaMart) 본사를 찾았다. 미디어마트는 한국의 하이마트나 전자랜드 같은 베트남 현지 가전 체인이다. 베트남 북부 지역에만 미디어마트의 매장은 30여개에 달한다. 미디어마트는 지난해 매출 3억달러(한화 3600억원)를 기록했다.
미디어마트 본사 빌딩의 1층부터 4층까진 가전 매장이고 5층부터 8층까진 사무실이다. 가장 많은 고객이 방문하는 1층엔 스마트폰과 TV가 진열돼 있다. 매장 가운데엔 LG전자의 OLED TV가 자리했다. 응옌 탄하이 미디어마트 마케팅전략팀장은 “TV는 삼성과 LG 제품을 가장 많이 찾는다”며 “전체 TV 판매량 중 삼성이 30~35%, LG가 25% 가량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한국 제품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노이 중심가에선 ‘더페이스샵’, ‘토니모리’ 등 국내 뷰티 브랜드 매장을 만나볼 수 있다. 베트남의 소비재 수입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6% 증가했다. 글로벌 유통 기업들은 베트남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선 CJ그룹과 롯데그룹이 유통망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코트라 호찌민 사무소가 201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의 가구당 연간 가처분소득은 5000달러에 달한다. 호찌민과 하노이 같은 대도시의 경우 1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베트남 중산층의 확대는 스마트폰, 가전제품, 화장품 수요 증대로 이어졌다.
▲ “베트남 국민, 삼성·LG 집에 하나쯤 두고 싶어해”
탄하이 팀장은 “스마트폰은 삼성이 전체 판매량 중 40%를 차지한다”면서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의 오포(OPPO)가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포는 베트남 진출 1년 만에 스마트폰 시장의 20%를 차지했다고 탄하이 팀장은 설명했다. LG 스마트폰은 베트남 시장에서도 관심 밖이었다. 탄하이 팀장은 “전체 판매량 중 2% 정도”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한국 제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탄하이 팀장은 한류 효과를 꼽았다. 그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삼성이나 LG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드라마 주인공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제품을 쓰고 싶어한다”며 “매장을 찾은 고객들에게 ‘어떤 드라마에서 나왔던 제품’이라고 하면 관심을 많이 둔다”고 말했다.
미디어마트에서 많이 팔리는 TV는 50인치급 LED TV다. 판매가격은 1640만동, 한국돈으로 80만원 가량이다. 1억1200만동(한화 550만원)짜리 LG전자의 65인치 OLED TV도 많진 않지만 간간히 팔린다고 미디어마트의 판매 직원이 설명했다.
베트남의 1인당 GDP가 2000달러라는 걸 감안하면 다소 비싼게 아닐까? 탄하이 팀장은 “베트남 사람들은 한번 살 때 좋은 걸 사는 게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한국인만 찾던 매장에서 베트남인 곁으로… ‘K-마켓’의 진화
호안끼엠 지역에서 하동(Ha Dong)으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오후 5시 퇴근시간이 겹치면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행렬이 시작됐다. 꽉막힌 도로에서 90분을 보냈다.
하동에서 K-마켓 직원을 만났다. K-마켓은 고상구 K&K글로벌무역 회장이 2006년 베트남 현지에 낸 한국 제품 전문 매장이다. 베트남 전국에 60개의 매장이 있다.
설립 초기엔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만 찾았지만 최근 들어 베트남 현지인의 구매 비중도 부쩍 늘었다.
“여기 있는 물만두와 단무지, 한국산 식제품이 불티나게 팔립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에 K-마켓의 송혜실 매니저가 빠르게 대답했다. 답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근 빅히트 친 제품은 ‘불닭볶음면’이랑 ‘셰프의 치즈케익’입니다. 베트남에서 매운걸 먹으면 성공한다는 속설이 퍼지면서 갑자기 확 떴습니다. 치즈케익은 이번 여름에 없어서 못 팔아요. 넣어두면 금방 사라집니다. 이 두 제품은 한국인보다 현지인이 더 많이 찾아요.”
이날 하루동안 3곳의 K-마켓 매장을 돌아봤다. 매장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정관장 제품 진열대였다. 매장 초입,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엔 여지없이 정관장이 자리했다.
송 매니저는 “우리나라 사람도 많이 사가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선물용으로 한국 홍삼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만난 한국인 가이드로부터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홍삼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동의보감과 같은 베트남 전통 의학서에 고려인삼의 효능이 쓰여 있다”며 “베트남 사람들에게 고려인삼은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할 세 가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상품이 물류비 때문에 한국보다 비쌌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수입한 암바사 250ml들이 캔이 2만1000동(한화 1050원)이었다. 한국에서 받는 가격의 3배였다. 1인당 GDP가 2000달러인 베트남 국민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너무 비싼 게 아닐까.
송 매니저는 “일반 국민 소득을 생각하면 비싼 게 사실”이라면서도 “우리의 주 타깃 고객은 베트남에 거주 중인 한국인과 상위 10%의 베트남 국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춰 신규 매장도 고급주택단지를 중심으로 늘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매니저는 한국산 제품의 강점으로 ‘신뢰’를 꼽았다. 그는 “베트남 사람들은 먹거리 안전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에게 한글이 써진 라벨은 ‘믿을만한 제품’으로 통한다. 영어 라벨이 붙은 수출용 제품보다 한글로 쓰여 있는 내수용 포장 제품이 훨씬 잘팔린다”고 말했다.
▲ 한국산 소비재 진출 전략 다변화 필요
CJ 베트남 법인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26.7% 성장률을 기록했다. 괄목상대한 성장에 CJ는 문화콘텐츠, 식품 등 베트남 신규 프로젝트에 5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롯데마트는 2011년 진출 첫해 지점 2개에서 6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2013년 1060억원(점포 6개), 2014년 1580억원(점포 10개), 2015년 2170억원(점포 11개)의 매출을 냈다. 올 상반기엔 13호점 매장을 확대했으며 매출은 1270억원을 기록했다. 롯데그룹은 마트 뿐 아니라 호찌민의 랜드마크인 ‘다이아몬드 플라자’를 인수해 백화점도 운영하고 있다. 홍원식 롯데마트 베트남법인장은 “광역 유통망을 갖춘 국내 유일의 베트남 진출 유통업체로서 현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쇼핑 문화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는 2015년 호찌민에 이마트 1호점을 내며 베트남에 진출했다. 신세계는 현재 호찌민 2호 매장 개점을 추진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베트남 1호점인 고밥점은 자체상표(PB)상품인 ‘노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당초 계획 대비 110% 매출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9월 9일 호찌민시와 2억달러 규모의 ‘호찌민시내 투자 확대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김성영 이마트 신사업본부장은 “호찌민을 교두보로 베트남 시장 확장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홈쇼핑의 진출도 활발하다. CJ오쇼핑, GS홈쇼핑, 롯데홈쇼핑은 이미 베트남에 진출해 영업하고 있다. 현대홈쇼핑도 지난 1월부터 송출을 시작했다.
베트남 국민은 간편한 주문 방식과 가격 할인 등의 이유로 홈쇼핑을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시장조사기관 Q&Me가 2015년 성인남녀 11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20%는 ‘TV 홈쇼핑을 통해 물건을 구매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중 47%는 ‘정기적으로 TV홈쇼핑을 시청한다’고 답했다.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CJ오쇼핑은 베트남의 SCTV와 2011년 합작해 ‘SCJ홈쇼핑’을 개국했다. 2011년 30억원의 판매실적을 기록한 SCJ홈쇼핑은 2012년 140억원, 2013년 210억원, 2014년 275억원, 2015년 300억원으로 매출이 늘었다.
GS홈쇼핑과 베트남 패션기업 ‘손킴그룹’의 자회사 ‘Vision21’이 합작한 'VGS SHOP'의 판매실적도 2014년 82억원에서 2015년 165억원으로 두배 성장했다. 순이익도 지난해 흑자로 전환했다.
업계에서는 홈쇼핑의 선전이 국내 중소기업의 판로 개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GS홈쇼핑은 2015년 140종류의 한국상품을 해외 채널을 통해 판매했는데, 이 중 중소기업 상품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코트라 호찌민 무역관은 “베트남에서 한국 홈쇼핑업체들이 한국산 제품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며 “우리 중소기업들의 시장 판로 개척과 판매 확대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엄주환 CJ오쇼핑 베트남 법인장은 “건강식품과 한국 음식, 패션상품과 일반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한국 상품들이 홈쇼핑을 통해 베트남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고 있다”며 “베트남 시장은 향후 5~10년간 높은 성장을 구가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수출의 꿈을 이룰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는 홈쇼핑과 함께 온라인 유통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2012년 5억달러 규모였던 베트남 온라인 유통시장은 2015년 32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 인터넷 보급 확대와 배송·결제 통합서비스 COD 도입이 큰 역할을 했다. COD는 구매자가 배송된 물품의 상태를 확인한 후 대금을 치르는 방식이다.
박병국 코트라 하노이무역관 부관장은 “베트남은 급속 성장하면서 새로운 제도가 빠르게 도입됐다”며 “우리 기업인들에겐 생소할 수 있는 제도가 많기 때문에 사전에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지 않고 개별 도시 단위로 접근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베트남은 국토가 종으로 길어 북부와 남부 문화의 차이가 있다. 도시와 지방의 소득 격차도 상당하다. 이창 포스코대우 베트남 법인장은 “베트남의 지방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80년대 농촌 모습이지만 하노이와 호찌민은 농촌과는 전혀 다르다”며 “도시마다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