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6개월 넘게 연체한 항만 이용료, 용선료 등의 여파로 전세계 각지에서 선박이 억류되어 '물류 대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당정과 채권단은 "한진그룹이 담보를 내놓지 않으면 자금 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당정과 채권단은 물류대란이 예상보다 심각한 양상을 보이면서 한때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압력에 굴복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원칙을 지키는 쪽으로 입장을 모았다.

한진해운의 컨테이너 선박이 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서부 해안의 롱비치항에 입항하지 못한 채 근해에 정박해있다.

한진그룹은 지난 5일 산업은행을 방문해 지원 의사를 표명했는데, 채권단이 먼저 긴급 자금을 수혈해주면 대한항공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추가 지원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힌 수준이다. 법정관리(회생절차) 신청 이전의 자구안과 똑같은 제안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 당정 "1000억 긴급 지원… 담보는 받아야"

6일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당정회의 결과를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장은 "정부가 나서 장기저리자금 1000억원, 그리고 그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면서 "정부도 이렇게 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다만 추가 지원과 관련해서는 단서가 붙었다. 한진그룹이나 한진해운이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한진해운에서 담보를 대든지, 조양호 회장이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무조건적인 지원은 아니고 담보를 전제로 한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당정이 추가 지원을 하겠다는 속보를 접하고 화들짝 놀랐던 산업은행은 이내 당정 발표 내용 전문을 확인하곤 채권단 원칙과 똑같은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 DIP금융(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요청이 들어온 것도 아니라 당장 한진해운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이라며 "무엇보다 구조조정 원칙을 지켜 한진해운이 물류 대란 사태 해소와 관련한 자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물류 대란은 기본적으로 한진의 책임"이라며 "한진해운이 이미 돈을 받고 실은 화물에 대한 문제인 만큼, 한진그룹이 화주들에게 신뢰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압박했다. 임 위원장은 또 "한진해운이 선적 화물에 대한 화주, 운항 정보 등을 제공하는 데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면서 "질서 있게 대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 한진그룹, '채권단 先지원' 전제로 한 자구안 제출…채권단 거절

전날 한진그룹은 물류 대란에 대한 해결 의지를 표명했다. 자구안과 유사한 형태로 최대 5000억원을 수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는 조건부였다. 자구안을 제출할 때와 마찬가지로 채권단이 5000억원가량을 긴급 지원하면 대한항공이 연내 2000억원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이후 내년 7월쯤 다시 한번 2000억원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또 조양호 회장과 계열사가 1000억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와 채권단은 이는 채권단이 먼저 자금을 대야 하는 구조여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그룹에서 툭하면 배임, 배임 그렇게 얘기하는데 우리 또한 법정관리 기업에 묻지마 투자를 하는 것은 배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다만 한진그룹이 사태 발생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있어 추가 제안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양수산부와 금융위 등에 따르면 한진해운이 연체한 자금 규모는 6500억원선이다. 법원은 당장 묶여 있는 선박과 화물을 확보하는데는 약 1000억~2000억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또 5일 밤 기준 전세계 항만에서 억류돼 있는 한진해운 선박은 79척(컨테이너선 61척, 벌크선 18척)에 이른다. 이날 집계한 비정상 운항 선박 수는 전날 집계한 68척보다 11척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