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모(43)씨는 최근 다른 동네 아파트로 이사한 뒤 전기요금 때문에 억울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씨가 이사한 집에 살던 종전 세입자는 이달 들어 이사 간 날까지 일주일 동안 158kWh를 쓰고, 관리비를 정산한 뒤 이사했습니다. 이사 며칠 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이씨네가 이번 달 남은 기간 동안 쓰는 전기는 0kWh가 아닌 158kWh부터 계산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50kWh 넘게 쓸 때부터 누진제가 적용되니, 이씨는 꼼짝없이 처음부터 2배 정도 비싼 전기를 쓰게 된 겁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 2대로 여름을 나는데도 말입니다.

이씨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한국전력 지역 지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사 가면 가스요금은 앞사람 것과 딱 구분해 계산이 되는데, 왜 전기요금은 안 되는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전 직원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아서 할 문제"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왜 관리사무소 책임일까요? 일정 규모를 넘는 아파트는 한전과 '단일계약'이라는 것을 합니다. 한전이 아파트 단지에 초고압 전기를 일괄적으로 쏴 주고, 관리사무소에서 이를 분배하고 검침하는 방식입니다. 전국 2200만가구 중 850만가구가 이런 단일계약 방식을 적용받고 있답니다. 한전은 관리사무소가 검침을 하니 누가 이사를 오가는지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관리사무소는 새로 이사 온 사람의 전력 사용량을 0kWh부터 계산하면 한전이 해당 가구의 누진 요금을 깎아줘야 하는데, 한전이 전기료를 깎아주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계산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한전 관계자는 "이사 나가는 사람이 누진 구간 이상으로 썼으면, 쓴 것보다 전기요금을 조금 더 내고 가면 되는 것 아니냐"며 "이사 가는 사람과 이사 오는 사람의 개인 간 거래에 한전이 관여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단일계약을 핑계로 비싼 누진요금을 꼬박꼬박 챙겨야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한 달에 20만가구 정도가 이사를 하고, 이 중 절반은 아파트로 이사합니다. 이사 가는 사람 붙잡고 "누진 구간 넘게 전기를 쓰셨으니 돈을 더 주셔야겠습니다"라고 사정하기 전엔 해결 방법이 없는 걸까요?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