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내놓은 스마트폰 '갤럭시S7', '갤럭시노트7'이 연일 판매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무선사업부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2013년 '갤럭시S4' 성공 이후 별다른 히트작이 없었던 무선사업부가 3년 만에 '갤럭시 7시리즈'의 성공으로 다시 삼성전자의 효자(孝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작년 말 무선사업부 수장(首長)으로 취임한 고동진(55) 사장이 취임 첫해 쾌속 순항하는 셈이다. 삼성 안팎에서는 산업공학과 출신인 고 사장의 과감한 권한 위임과 다양한 의견을 잘 조율하는 소프트 리더십이 빛을 발한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삼성은 이제 소프트웨어 회사"

고동진 사장의 '제1 원칙'은 소프트웨어 우선주의다. 그는 무선사업부장에 임명된 지 일주일 만에 개발실 조직을 둘로 쪼갰다. 개발실을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조직으로 분리하고, 소프트웨어 조직을 선임(先任) 격인 '개발 1실'로 이름 붙였다. 하드웨어 중심의 삼성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고 사장은 "하드웨어가 김장김치라면 소프트웨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묵은지"라며 "적절한 사람을 확보해 시간과 권한을 주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게 내 역할"이라며 개발 1실에 힘을 실어줬다. 하드웨어 개발 일정에 맞춰 '6개월 안에 무조건 만들어내라'는 식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닦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가 '소프트웨어 우산' 역할을 맡긴 개발1실장 이인종(51) 부사장도 삼성에선 좀처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인물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2011년 삼성에 영입됐다. 그는 단추 두 개쯤 풀린 셔츠와 목덜미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헝클어진 머리가 트레이드마크. 과·차장급(책임)에게도 과감하게 프로젝트 전권(全權)을 주는 등 파격적으로 조직을 이끌고 있다. 이인종 부사장은 "이젠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보조가 아닌 무선 사업 전체를 이끌도록 만들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의 말대로 개발 1실은 삼성페이(간편 결제), 삼성패스(생체인증 기반 금융·온라인 서비스) 등 갤럭시 7시리즈의 핵심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개발2실장 노태문(48) 부사장도 탄탄하게 '하드웨어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갤럭시S부터 S7까지 모든 제품 개발에 참여한 '정통 갤럭시맨'이다. 만 38세에 상무를 달고 5년 만에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노련하고 탄탄한 경험을 바탕으로 과감한 변화 없이도 방수·방진 기능,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그립감, 정교해진 S펜 등으로 소비자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전략마케팅실'은 신제품 기획부터 최종 판매까지 개발 외에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핵심 조직이다. 실장인 이상철(56) 부사장을 비롯해 유니레버·로레알을 거친 마케팅전문가 이영희(52) 부사장 등이 이끌고 있다. 갤럭시 노트7을 출시하면서 통상적인 블랙·화이트 대신 블루·실버 등 개성 있는 색상을 먼저 출시하고 브라질 리우올림픽 참가 선수 전원에게 '갤럭시S7엣지'를 나눠주는 과감한 마케팅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도 전략마케팅실 작품이다.

"젊은 직원 목소리를 듣자"

고동진 사장은 사업부장이 된 후, 매주 금요일 오전 일정을 모두 비우고 직원들과 대화하는 '오픈 디스커션 타임(Open Discussion Time)'이란 걸 만들었다. "업무 애로사항도 좋고, 신규 사업이나 제품 아이디어를 사장한테 직접 얘기하라"는 취지다. 고 사장은 또 젊은 직원들이 사내 게시판에 불만이나 개선사항을 올리면 '고동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답을 달며 직접 소통한다.

갤럭시7 시리즈의 성공에도 고 사장의 소통(疏通)이 큰 도움이 됐다. 갤럭시노트7에서 블루 색상을 가장 먼저 내세운 것도, 고 사장이 젊은 직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수용했기 때문이라는 후문(後聞)이다. 현재 갤럭시노트7 블루코랄 제품은 전 세계 시장에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관리가 강한 삼성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해 제품 출시에 반영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하드웨어 중심의 무선사업부 조직문화를 바꾸는데 고 사장이 앞장서면서 조직 전체에 빠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