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으로도 백화점표 남성 정장을 살 수 있다. 롯데백화점은 9월부터 중저가 남성 정장 브랜드인 '맨잇슈트'를 출시하고 남성 정장 상·하의 한벌을 9만8000~39만8000원에 판다고 밝혔다. 맨잇슈트는 롯데백화점이 '젠(ZEN)'이라는 중저가 양복 브랜드를 운영하는 부림광덕과 만든 브랜드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세계 최대의 남성 정장 공장을 운영하는 부림광덕이 생산을 맡아 가격을 낮췄다. 9월 안양점·인천점·중동점·상인점, 올해 연말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김해점에 문을 열고 내년부터 전국 매장으로 확대한다.

백화점이 생존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고가(高價) 브랜드만 고집하던 전략을 버리고 저가(低價)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의류 시장 주도권이 SPA(한 회사가 제조와 유통을 모두 맡는 초저가 브랜드)에 넘어가면서 의류 판매가 전체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국내 백화점 전체의 매출 신장률은 작년 1.7%에 그쳤다. 이는 대형마트·아웃렛 매출 신장률인 2.2%보다 낮고, 19.4%를 기록한 온라인 쇼핑 매출 신장률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문턱 낮추는 백화점

현대백화점은 올해 초부터 무역센터점·신촌점 등에 '스트리트MD존'을 만들어 9900원짜리 티셔츠와 5만원대 청바지를 파는 부루앤쥬디 같은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박기홍 현대백화점 영패션 상품기획자는 "다른 백화점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30~50% 싸다"며 "매출이 이전에 같은 매장에 있던 브랜드보다 50% 많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이 부림광덕과 만든 남성 정장 브랜드 '맨잇슈트'의 9만8000원짜리 정장. 인도네시아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부림광덕이 제조를 맡아 SPA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남성 정장을 판매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작년 9월 강남점을 리뉴얼하면서 지하를 '파미에 스트리트'라는 매장으로 꾸몄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리뉴얼 뒤 해당 공간에서 물건을 구매한 고객이 8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가격이 주로 5만원 이하인 스타일난다·난닝구와 같은 중저가 브랜드를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입점시켰고, 이 브랜드들의 매출은 올 상반기 작년보다 28.3% 늘어났다.

이는 고객 이탈을 막아 보려는 것이다. 이선대 롯데백화점 상무는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일부 SPA 브랜드의 연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서고 온라인 쇼핑몰 시장이 백화점 시장의 2배 가까운 규모가 된 상황에서 백화점이 고가 제품만 팔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패션 시장에서 SPA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2008년 패션 시장 중 1.8%를 차지하던 SPA 브랜드들은 올해 9.7%까지 비중이 늘어났다. 그만큼 남성복·여성복·캐주얼 등 기존 의류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은 낮아지고 있다.

불황 겪은 일본도 초저가 시장 '활활'

패션 업계에서는 초저가 브랜드가 더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보다 앞서 SPA가 패션 시장을 점령했던 일본과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0년대 불황 이후 패션 시장이 최고급 시장과 초저가 시장으로 양분됐다. 유니클로 같은 SPA가 인기를 얻자 일본 남성 정장 회사들도 SPA에 맞서 저가 브랜드를 출시했고 현재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저가 남성 정장 브랜드를 파는 아오야마·아오키·코나카·하루야마 4개 회사의 매출은 2010년 3360억엔(약 3조7500억원)에서 작년 3967억엔(약 4조4300억원)으로 늘었다.

나인경 삼성패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불황이 지속되면서 패션 업계가 초저가 시장과 초고가 시장으로 나뉘는 양극화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한 회사가 제조와 유통을 모두 맡는 초저가 브랜드. 유니클로·자라·H&M 등이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