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임지훈 카카오 대표의 홍보성 글을 보게 됐다. 카카오가 내놓은 '카카오송금'이 KEB하나은행과 연동을 시작했으니 많은 이용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카카오 송금을 실제로 사용해보니, 사용자인터페이스(UI)와 거래 방식, 1원 본인 인증 등이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가 만든 토스와 닮아 있었다. 실제로 카카오송금은 '베끼기' 논란 있던 서비스다.
문득 2015년 9월 어느 날 오후 서울 논현동 뒷골목 작은 빌딩 4층에 자리 잡은 모바일 송금서비스 ‘토스(Toss)’의 비바리퍼블리카를 찾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게 스타트업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사무실은 비좁고 더웠다.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는 유흥주점과 퇴폐업소로 보이는 간판이 번쩍였다. 양주영 최고업무책임자(COO)는 “아직 매출이 없어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선택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토스 임직원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은행과의 거래를 뚫기 위해 분주했다. 송금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행과의 계약이 필수다. 이날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를 만나려 했지만, 은행과의 회의가 늦어지면서 만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1등 간편송금 서비스’를 만들어보겠다는 임직원들의 열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간편 송금 서비스의 핵심은 은행과의 제휴다. 예를 들어 사용할 수 있는 은행이 많아야 서비스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자신이 사용하는 주거래 은행이 연동돼 있지 않는다면 간편 송금서비스는 필요가 없는 셈이다.
토스는 지난 2015년 2월 서비스를 시작했고 카카오송금은 1년 2개월 후인 올해 4월 첫 서비스를 시작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간편송금이 없던 국내 환경에서 토스를 서비스하기 위해 굴지의 은행권을 대상으로 힘겨운 설득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일년 반이 지나 총 17개의 은행들과 연동할 수 있었다. KEB하나은행 신한은행의 경우 계약을 체결하는 데 2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반면 카카오송금은 서비스 출시 2개월 만에 KEB하나은행을 비롯해 신한은행, SC은행, 산업은행, 제주은행, 신협 등 6개의 은행과 거래를 텄다. 사실상 토스에 비해 거래은행을 늘리는 속도가 최대 10배는 빠른 셈이다. 매출 9300억원과 막강한 인지도를 가진 카카오가 스타트업인 비바리퍼블리카에 비해 사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비슷해 보인다.
비바리퍼블리카 관계자는 “수많은 고생과 노력을 통해 간편송금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상황에서 카카오가 무임승차를 하는 것 같다”며 “비슷한 서비스 수준이 아닌,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보고 배울 수 있을 만큼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 비즈니스다. 플랫폼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일종의 장터다. 큰 시장이 형성되면 물건을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이 모여든다. 카카오는 그걸 노린다. 카카오 카카오는 택시를 시작으로 5월 말에는 대리운전 ‘카카오 드라이버'를 출시했고 현재 가사도우미, 미용, 주차장, 세탁 서비스 등 다양한 O2O 비즈니스를 준비 중이다. 비바리퍼플리카가 그랬듯이 이 분야 소상공인들도 카카오톡의 O2O 진출이 골목상권을 파괴할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릴 기세다.
카카오가 플랫폼을 넘어 거대한 생태계를 꿈꾸는 기업이라면, 또 구글, 애플, 네이버 등과의 생태계 싸움에 도전하고 있는 회사라면, 임 대표의 홍보 발언에도 고민이 더 묻어나야 한다. 임 대표가 스타트업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시장에 비슷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잘했다”며 ‘자화자찬(自畫自讚)’만 할 것이 아니라 “(소상공인과 동종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고민이 무엇인가요?” 라며 상생(相生)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