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벤처 신화의 그림자’

김정주 NXC 회장과 진경준 검사장의 관계는 한 검사장의 단순한 ‘주식 대박’ 스토리에서 국내 대표 벤처사업가가 검사에게 주식 매입 자금과 자동차 등을 준 뇌물수수 사건으로 결말을 맺었다. 두 사람의 유착 관계(커넥션)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김 회장은 1996년 단돈 6000만원으로 넥슨을 설립, 연매출 2조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게임업체를 키웠다. 그런 그의 찬란한 성공 뒤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게임·인터넷 전체에도 뼈아픈 일이었다. ‘86학번 공대’로 불리는 게임·인터넷 창업 주인공들은 그동안 한국 재벌의 행태와는 무관하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김정주 NXC 회장이 검찰에 처음 출두했을 당시 모습.

◆ 무너진 도덕성에 ‘공식 사과’…넥슨 등기이사서 물러나

이금로 특임검사 수사팀은 지난 29일 진경준 검사장을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이와 함께 뇌물을 제공한 김정주 회장을 뇌물공여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진경준 검사장은 2005년 6월 넥슨이 빌려준 4억2500만원으로 넥슨 비상장 주식 1만주를 매입했다. 빌려준 돈이었지만 진 검사장은 김 회장에게 “내 돈으로 사야 하냐”며 사실상 공짜로 주식을 달라고 요구했고 김 회장은 진 검사장에게 주식 매입 자금 4억2500만원을 입금했다. 진 검사장은 2006년 10억여원에 비상장 넥슨 주식을 넥슨에 되팔았고 이중 8억5000여만원으로 넥슨 재팬 주식을 취득했다.

수사팀은 공소 시효가 끝나지 않은 주식 관련 뇌물 액수를 8억5000여만원으로 봤다. 이외에도 진 검사장이 넥슨 측으로부터 받은 11차례 여행경비 5000여만원, 2008~2009년 넥슨이 무상으로 제공한 제네시스 차량 2000여만원과 넥슨의 해당 차량 인수비용 현금 3000만원도 뇌물에 포함했다.

이날 뇌물공여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 회장은 공식사과문을 발표하고 넥슨 등기이사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사과문을 통해 “사적 관계 속에서 공적인 최소한의 룰을 망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라며 “너무 죄송해 말씀을 드리기 조차 조심스럽고, 법의 판단과 별개로 평생 이번의 잘못을 지고 살아가겠다”고 말하며 일본상장법인인 넥슨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 김정주와 진경준의 문제적 관계…”직원에게도 잘 안주던 주식, 친한 권력자에게는 공짜로”

김정주 회장과 진경준 검사장은 알려진대로 서울대학교 86학번 동기로 오랜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 검사장은 넥슨 비상장 주식 1만주를 공짜로 받았고 이 주식을 팔고 넥슨 재팬에 투자해 126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올해 3월 공개된 공직자 재산 순위에서 진 검사장은 1위에 올랐다.

두 사람은 이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줄곧 거짓해명을 했다. 진경준 검사장은 “장모 돈과 내 돈으로 주식을 산 것”이라고 밝혔다가 “넥슨이 빌려준 돈으로 주식을 샀다가 되갚았다”고 말을 바꿨다. 넥슨도 진 검사장과 입을 맞추고 “진 검사장 등에게 돈을 일시적으로 빌려줬다가 상환받았다”고 공식 해명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진경준 검사 대박 사건이 불거진지 3개월 만에 김 NXC 회장이 진 검사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드러나고 김 회장이 공식 사과해 두 사람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왼쪽부터 김정주 NXC 회장과 진경준 검사장.

넥슨 안팎에서는 김 회장이 권력자에게 주식을 공짜로 나눠준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 인터넷·게임 업계에서는 “회사 성장과는 무관한 진경준 검사장이니 김상헌 네이버 대표(전 서울 지방법원 판사)한테는 왜 주식을 줬나”라는 말이 나왔다. 김 회장은 창업 멤버한테도 지분을 잘 나눠 주지 않을 정도여서 넥슨 직원들조차 “지분 집착이 강하다”는 말을 듣는다.

실제로 김정주 회장은 창업 멤버인 친구들이 회사를 떠날 때나 직원들이 퇴사할 때마다 지분을 회수했다. 김정주 회장은 뇌물을 준 이유에 대해 “형사사건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엔씨소프트 측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2012년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김정주 회장과 함께 미국 게임업체 일렉트로닉아츠(EA)를 공동으로 인수하기 위해 엔씨소프트 개인 지분을 넥슨 측에 팔았다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두 사람의 경영권 분쟁은 엔씨소프트가 자사주를 넷마블에 매각, 이 회사를 ‘백기사(白騎士)’로 내세워 끝이 났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게임 산업은 전통적인 재벌기업이 안고 있는 태생적인 ‘원죄’인 정경유착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난 ‘양지의 산업’이었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넥슨은 물론 게임산업 전체가 도덕성에서 치명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 넥슨 ‘오너 리스크’도 벅찬데…각종 이슈도 논란

김정주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고 등기이사에 물러나면서 넥슨 경영에도 빨간 불이 커졌다. 또 지주회사의 자회사인 유모차업체 ‘스토케’, 블록장남감 거래사이트 ‘브릭링크’ 등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넥슨코리아는 오너 리스크 외에도 각종 게임 서비스 이슈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 회장이 불구속 기소된 날 넥슨코리아는 여성 캐릭터 성 상품화와 선정성 논란으로 ‘서든어택2’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 게임은 PC방 점유율 순위 106주 연속 1위 기록을 세웠던 ‘서든어택’의 후속작으로 개발비에만 300억원 투자됐다

넥슨은 또 온라인게임 ‘클로저스’의 성우 교체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넥슨이 클로저스의 신규 캐릭터 티나의 목소리를 맡은 성우가 여성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져 네티즌의 항의가 빗발쳤다.

넥슨 측은 넥슨이라는 조직이 전문경영인(CEO) 체제로 운영된 만큼 오너의 검찰 수사 리스크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 검찰 칼끝 NXC로 향하나

넥슨 지배구조.

넥슨 그룹은 NXC를 지주회사로 두고 NXC, 읿본 상장법인인 넥슨이 넥슨 코리아와 넥슨 유럽, 넥슨아메리카를 지배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다. 넥슨코리아는 또 네오플, 엔도어즈 등을 소유하고 있다. 김정주 회장과 부인 유정현씨가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NXC 지분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검찰은 김정주 회장에 대한 수사는 계속 해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수사가 지주회사인 NXC를 포함한 넥슨 그룹 전반으로 확대될 지 주목되고 있다.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달 11일 게임회사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48)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를 2조8000억원대의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넥슨코리아 주식을 넥슨재팬에 헐값에 매각했다는 게 요지다.

김 정주 회장은 일본상장법인인 넥슨의 등기이사직은 물러났지만, NXC 회장직이나 등기이사에서는 물러나지 않았다. 수직게열화한 넥슨 지배구조의 특성을 고려하면, 김정주 회장의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이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넥슨 측은 “넥슨 관계자는 “김정주 회장이 넥슨 재팬에 물러난 것는 상장사로 있는 회사인만큼 주주들에게 사과하는 의미가 있고 회사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