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은 PC 회사에서 클라우드와 수십억개의 스마트·커넥티드 기기에 힘을 불어넣는 회사로 거듭날 것입니다. (Our strategy itself is about transforming Intel from a PC company to a company that powers the cloud and billions of smart, connected computing devices.)”

지난 4월 19일.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메일 한통을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크르자니크 CEO는 "데이터센터와 사물인터넷(IoT) 사업은 인텔의 핵심 성장 엔진이 됐다"며 "직원부터 사업장, 사업 프로젝트들이 이 방향으로 나란히(align) 갈 수 있도록 변화를 가속하겠다"고 적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

전체 임직원의 11%인 1만2000명을 구조조정한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에 크르자니크 CEO가 보낸 이 이메일은 인텔의 '대변신'과 ‘대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CPU) 칩 분야에서 세계 1위인 회사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은 PC 및 전자 기기의 핵심 부품이다. 인텔의 실적이 곧 세계 PC 및 전자 기기의 판매실적일 정도였다. 이런 회사가 PC를 넘어선 초(超)연결 시대의 리더가 되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쉽게 말해 프로세서가 다양한 기기들에 탑재돼 사물들을 연결하고, 이들이 모은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낸다. 클라우드에 모인 데이터는 분석해 사용자에게 새로운 가치 또는 서비스로 제공된다. 인텔은 이 '선순환 구조'의 끝과 끝을 책임진다는 얘기다.

크르자니크 CEO는 "만약 그 사물이 컴퓨팅 능력을 갖추고,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면, 인텔과 함께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걸린 인텔 광고판

◆ 인텔 "모든 것은 클라우드를 통한다"

인텔의 PC사업 연 평균 성장률은 기대치인 15%를 크게 밑도는 3%대(2015년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PC 사업을 대체할 신성장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텔은 클라우드와 IoT로 꾸려갈 '선순환(virtuous cycle) 성장 구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초연결 시대에는 PC 시장과 서버 시장이 각각 다른 시장이 아니다. 초소형 웨어러블 기기부터 스마트폰, 태블릿, PC는 물론 자동차, 디지털 사이니지, 그리고 통신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 슈퍼컴퓨터까지 서로 다른 수천가지 컴퓨팅 환경이 동시에 돌아간다. 이 모든 서비스는 네트워크를 통해 클라우드로 연결되고, 그 클라우드를 통한 서비스는 결국 다시 새로운 기기와 연결된다. 인텔이 말하는 선순환의 골자다. 인텔은 지난해 '모든 것을 위한 클라우드(Cloud for all)'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텔에 따르면, 5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600대 팔릴 때마다 서버가 한 대씩 팔렸다. 이제는 스마트폰 100대만 팔려도 서버 1대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 사물과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 시대의 데이터 양과 인터넷 사용량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증가할지는 전문가도 예측이 어려울 정도다.

전기 계량기가 가정용 게이트웨이(전송장치)를 통해 제어되고, 고속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클라우드에 사용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서버에서 집계, 분석된 데이터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보고, 전체적인 전기 사용량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자율주행 차량 역시 수많은 차량용 센서가 주변 환경을 읽어 들이고, 고성능 프로세서로 센서 정보를 데이터로 가공하고 상황을 판단한다. 그리고 각 차량은 LTE(롱텀에볼루션)나 5G(5세대) 네트워크로 주변 도로 정보를 읽어 들이는 텔레매틱스로 연결된다.

인텔의 선순환(virtuous cycle) 성장 청사진.

인텔은 반도체 역량을 바탕으로 ‘연결과 그 접점’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센서를 비롯한 소형 사물에는 저전력 ‘쿼크’ 프로세서를, 게이트웨이에는 ‘아톰’ 프로세서, 태블릿이나 PC에는 고성능 프로세서인 ‘코어’, 네트워크 망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는 서버용 ‘제온’과 ‘제온 파이’ 프로세서를 내세웠다.

인텔, 디바이스에서 클라우드까지...모든 영역에 칩 장착 <2016. 7. 12>

인텔은 시스템 반도체 제품군만 준비한 것이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새로운 메모리 기술인 ‘3D X(크로스) 포인트’를 발표하며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다시 뛰어들었다. 1985년 D램 사업을 접으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손을 뗀 지 무려 30년 만에 재입한 것이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해야 하는 클라우드 시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인텔의 새 메모리 칩은 낸드플래시와 마찬가지로 전원 공급이 끊겨도 저장된 데이터가 보존된다. 인텔은 기존 낸드플래시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1000배 빠르고, D램보다 10배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성능 메모리는 데이터센터의 고성능 스토리지용으로 적합하다.

최근 인텔의 인수합병(M&A)도 클라우드와 사물인터넷(IoT)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수한 세계 2위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업체 알테라가 대표적인 예다. 알테라 인수합병(M&A)은 인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딜(176억달러,약 18조5000억원이었다. FPGA는 용도에 따라 설계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반도체다.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대로 프로그래밍해 사용할 수 있는 주문형 반도체인 셈이다. 인텔 서버 칩인 제온에 알테라의 FPGA를 일종의 패키지 형태로 팔면, 검색, 분류, 문자 매칭 등에 특화한 서버를 만들 수 있다. 향후 사물인터넷 시대에 대응하는 데도 주문형 반도체 기술인 FPGA는 필수적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x86 서버용 칩의 세계 시장 99%를 점한 인텔이 메모리를 패키지로 공급한다면 기존 낸드플래시 공급업체들을 위협할 것”이라면서 “세계 2위 FPGA업체인 알테라까지 손에 넣어 사물 인터넷 시대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의 프로세서 제품군.

◆ 위기 때마다 전면적인 변화를 선택한 인텔의 리더들

크르자니크 인텔 CEO의 선언은 스타트업에서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킨 역대 인텔 CEO의 위기 돌파 방식과 비슷하다. 인텔 리더들은 사업 위기 때마다 비즈니스의 중심 축을 바꾸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놓았다.

인텔의 역사를 ‘메모리 반도체 기업(1968~1985년),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업’ (1985~1998년), 그리고 ‘인터넷 기반 구축 기업’(1998년 이후) 등 3시기로 구분하는 전문가도 있다. 첫 번째 시기는 고든 무어(1968~1987년), 두 번째 시기는 앤디 그로브(1987~1998년), 세 번째 시기는 크레이그 배럿(1998~ 2005년)과 폴 오텔리니(2005년~2013년) 재임 시기와 맞물린다. 이들 CEO는 인텔의 주력 제품을 메모리 반도체,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터넷 관련 서버 프로세서 및 각종 부품으로 바꿔왔다. 그야말로 ‘포드가 자동차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전면적인 변신으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크르자니크 CEO는 지난 4월 인텔의 대변신을 예고할 때 웹캐스트를 통해 직원들의 질문을 일일이 받고 답했다. 모든 것을 공개하면서 변화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내며 초연결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윤은경 인텔코리아 부사장은 “인텔이 그동안 과감한 변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텔 특유의 '투명성'과 '수평적 문화'를 덕분일 것"이라면서 “모든 상사들이 직원과의 1대1 면담을 장려하고, 직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느끼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