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견주어볼 만한 상대는 애플이 아니라 애플 아이폰 조립으로 유명한 대만의 ‘폭스콘’으로 봐야 합니다. 폭스콘은 올 초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인 샤프를 인수한 데 이어 8만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이를 기계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삼성전자에 상당히 큰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외국계 기업을 상대로 컨설팅해주는 KABC(Korea Associates Business Consulting)의 대표이자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토니 미셸(Tony Michell)은 지난 6월 24일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물인터넷을 적용한 가전제품이 온전히 스마트폰 속에 녹아들어야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스마트폰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토니 미셸은 1978년부터 한국 정부 정책 수립을 위해 KDI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는 국제노동기구(ILO), 세계은행,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1989년 영국에 유럽과 아시아 소재 기업의 사업 전략을 컨설팅해주는 EABC(Euro-Asia Business Consultancy)를 설립하고 중국 베이징·홍콩·서울·평양 등에 지사를 세웠는데 한국 쪽 컨설팅 수요가 늘면서 아예 KABC를 설립했다. 2010년에는 라는 저서를 냈다.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다.
-저서에서 창의성을 막는 삼성전자의 보수적이고 관료제적인 문화를 지적하셨습니다.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거대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보수적, 관료제적 문화가 불가피하나 ‘정도’로 보면 대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입원·치료를 받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2014년 신년사에서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도 떨쳐내자”고 말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 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현재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삼성전자가 최근 ‘스타트업 삼성’을 표방하며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습관적 잔업을 없애는 등 기업문화에 대한 다방면의 혁신안을 내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삼성전자가 보수적이고 관료제적인 기업문화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관료제적 조직과 싸우는 게 우선입니다. 그점에서 삼성전자는 좀 더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삼성전자는 반도체칩부터 기기까지 모든 것을 설계, 디자인, 제조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마케팅하는 것도 삼성전자의 몫이죠. 그러나 (삼성전자의 경쟁상대로 오르내리는) 애플을 보면 디자인, 설계를 할 뿐 직접 기기를 제조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삼성전자처럼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와 애플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 부탁드립니다.
“애플은 브랜드이지, 삼성전자처럼 제품 라인업이 다양하지는 않습니다. 삼성전자의 미래가 훨씬 더 경쟁력 있다는 얘깁니다. 제품 측면에서 삼성전자와 견주어볼 만한 상대는 애플이 아니라 애플 아이폰 조립으로 유명한 대만의 ‘폭스콘’으로 봐야 합니다. 폭스콘은 거대한 제조 공장입니다. 애플뿐 아니라 HP부터 IBM까지 상당히 많은 고객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올 초 일본의 대표적 전자업체인 샤프를 인수한 데 이어 8만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기계로 인력을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삼성전자에 상당히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삼성전자의 위기 요인으로 꼽히는 중국 제조업체들의 추격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 업체들 역시 추격 과정에서 제조 비용 상승, 브랜드 이미지 구축 어려움 등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대만의 HTC를 생각해봅시다. HTC는 상당히 멋진 휴대전화들을 만들었지만, 일단 경쟁업체들에 밀리기 시작하자 회복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LG전자 역시 HTC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봅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스마트폰 부문 성장세가 사실상 끝나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어떻게 미래 먹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을 좀 더 발전시킨다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으로 좀 더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잘 만지는 사람들이 정작 사물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가령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냉장고’를 생각해봅시다. 우린 스마트폰을 들고 돌아다니는데, 인터넷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냉장고는 집에 있습니다. 이 냉장고가 스마트폰으로 완전히 들어와야 합니다. 아무리 냉장고가 겉으로 ‘스마트’해봐야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사물인터넷 진화에 맞게 스마트폰 인터페이스(interface)도 빨라져야 합니다. 여기에 기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빠르게 추격해 오는 중국 제조업체들을 조금이나마 따돌릴 수 있습니다. 냉장고 등 스마트 가전을 만들지 않는 애플을 따돌리기는 더 쉬워집니다.”
-삼성그룹의 3세인 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리더십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고(故) 이병철 창업주가 삼성을 세우고 토대를 닦았다면, 이건희 회장은 다른 선진기업들을 빠르게 추격하는 과제를 맡았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좀 더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됐습니다. 삼성전자가 이제 글로벌 선두 위치에 있기 때문에 따라가야 할 기업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이 와병중이기는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온전히 모든 실권을 넘겨받은 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식의 비즈니스 구조 변경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만은 아니고 삼성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다만, 삼성전자만 놓고 봤을 때 이 부회장은 아직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덜 끝난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 같은 큰 회사를 맡고 있는 경영자가 모든 기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내부 전문가들에게 의지하고 조언을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들의 제안이 맞기를 바랄 뿐입니다.”
◆ 토니 미셸(Tony Michell)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석·박사, 국제노동기구(ILO)·세계은행·유엔개발계획(UNDP) 프로젝트 수행,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