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미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핀터레스트(Pinterest)가 창업한 지 석달이 채 안 된 패션 스타트업 ‘스타일세이즈(Stylesays)’에 인수를 제안했다. 스타일세이즈는 패션 블로거와 의류 도매상을 연결해주는 플랫폼 업체로, 스탠포드 대학원을 중퇴한 스물 아홉살 한국 청년 김성준씨가 창업한 회사였다.

김 대표는 핀터레스트의 인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스타일세이즈가 핀터레스트보다 사업을 훨씬 더 잘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핀터레스트는 회사 지분 6~7%를 인수 대가로 제시했다. 핀터레스트의 현재 기업 가치(12조원)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지분 6~7%의 가치는 중간에 투자를 받아 지분이 희석된 것을 감안해도 약 1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수하동 페럼타워에 위치한 렌딧 본사에서 김 대표(32)를 만났다. 1000억원짜리 인수 제의를 거절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아픈 기억을 들추지 말라”며 웃었다.

김성준 렌딧 대표이사

김 대표는 자칭 ‘공돌이 출신 디자이너’다. 서울과학고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창업했던 회사들의 업종은 제각각이다.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띤 디자인 업체를 창업한 뒤 패션 유통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재는 핀테크(금융과 IT의 결합) 스타트업 ‘렌딧’의 CEO로 일하고 있다.

-과학고 출신 공대생이 디자인 전공을 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래는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할 생각이었어요. 뭔가 인류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미국 디자인 컨설팅 업체 아이디오(IDEO) 본사 직원의 강연을 듣고 그 다음주에 바로 산업디자인과로 전과(轉科)했어요.”

-강연 내용이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은 보통 디자인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IDEO의 디자인 철학은 ‘공감’과 ‘배려’였어요. 예를 들어 IDEO가 애플의 MP3 ‘아이팟 셔플’을 디자인할 때, 디자이너 뿐 아니라 심리학자와 마케터, 기계공학자 등이 함께 참여했다더군요. 그들은 모두 같은 문제에 공감하고 있었대요. 운동하면서 편하게 음악을 듣고 싶은데, 기존 MP3들은 대체로 크기가 커서 주머니에 넣으면 걸리적거린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결국 아이팟 셔플을 껌만한 크기로 단순하게 디자인하게 됐대요. 제가 알고 있던 디자인의 목적은 그저 보기 좋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 얘길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산업디자인과에서는 무엇을 배웠나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에서는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을 주로 배웁니다. 어떻게 하면 디지털 제품을 좀 더 효율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을 지 공부하는 거죠.”

카이스트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5년 11월, 김 대표는 서울과학고, 카이스트 선배인 류중희 대표가 창업해 훗날 인텔에 매각한 ‘올라웍스’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창업에 눈을 뜨게 됐다. 올라웍스에서 약 2년 간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김 대표는 삼성디자인멤버십으로 자리를 옮겨 제품 디자인 업무를 익혔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약 1년이 지나, 김 대표는 창업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처음 창업한 회사는 어떤 곳인가요.

“‘1/2 프로젝트’라는 사회적 기업이었어요. 소비자가 어떤 음식을 구매하면 그 중의 절반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사업을 했죠.”

-이해가 잘 안 가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예를 들어 저희가 국내 초콜릿 제조 회사와 손잡고 아이티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사업을 한 적이 있어요. 동그란 초콜릿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2000원에 판매했고, 판매액의 절반인 1000원을 굿네이버스를 통해 아이티에 기부했죠.”

-그런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삼성전자에 다닐 때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슬픈 영상을 봤어요. 아프리카에 사는 어린이가 목이 말라 깡마른 소의 소변을 받아 마시는 모습이었죠. 그걸 보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저는 2000원짜리 콜라 한 병을 사서 다 마시지도 않고 버리는 일이 잦았거든요. 영상을 보고 충격 받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전세계 인구의 53%가 하루에 2달러로 의·식·주를 모두 해결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손쉽게 기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 아닌가요.

“처음 1/2 프로젝트를 제안하러 국내 대형 유제품 업체에 찾아갔는데, 비판만 잔뜩 듣고 왔어요. 생산비가 훨씬 더 들어간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기업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대신 명망 있는 디자인 공모전에 출전하기로 했어요. 수상하면 저희를 보는 기업의 시선이 달라질 것 같았어요.”

김 대표는 1/2 프로젝트의 제품과 아이디어를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에 잇달아 출품했고, 4개의 상을 거머쥐었다. 2009년 레드닷어워드에서 우수상을, 스파크어워드에서 은상을 받았으며 IDEA어워드와 IF디자인어워드에서 각각 은상과 특별상을 수상했다.

김성준 대표가 1/2프로젝트 운영 당시 만들었던 제품을 보여주고 있다. 절반으로 자른 듯한 형태의 페트병에 음료수를 넣어 정가로 판매한 뒤,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고아원 등에 기부했다.

-공모전 수상 이후 기업들의 반응이 달라졌나요.

“초콜릿 제조 업체에서 먼저 찾아와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일 때 저희를 도미노피자에 소개해서 한 달 동안 공동 프로젝트를 했어요. 원하는 고객에 한해 피자를 반 판만 보내주고 나머지 절반을 고아원에 기부했습니다. 총 300판에 달하는 양이었어요.”

-사업이 잘 됐습니까.

“아쉽게도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해 사업을 접었어요. 초콜릿 사업을 할 때 이익이 남지 않더군요. 오히려 제가 사비 800만원을 털어 적자를 내가며 제품을 만들었어요.”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나요.

"사회적 기업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돈을 잘 벌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거죠. 그저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했을 뿐, 사업성을 고려하지 못했어요. 1/2 프로젝트는 훗날 꼭 다시 할 겁니다. 당시 공동 창업했던 친구는 지금 뉴욕의 대학에서 디자인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는데, 3~4년 뒤에 다시 동업하자고 얘기하곤 해요."

김 대표의 두 번째 회사는 2011년 6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스타일세이즈’였다. 당시 그는 미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사업을 병행한 건가요.

“스탠퍼드 대학원은 2010년 1/2 프로젝트를 운영할 때 입학했어요. 산업 디자인을 좀 더 심층적으로 배워보고 싶었어요. 스타일세이즈는 대학원에서 창업 관련 수업을 듣다 우연히 설립하게 됐습니다.”

-스타일세이즈는 어떤 회사였습니까.

“많은 사람이 유명인이 입은 것과 똑같은 옷을 사고 싶은 심리를 갖고 있잖아요. 과거엔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이 입은 옷을 따라 샀다면, 최근엔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졌죠. 그래서 유명한 블로거가 어떤 옷이나 가방을 착용하고 사진을 찍어 올려 반응이 좋을 경우, 도매상과 연결해 제품을 대량 생산·판매하는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제품 판매 수익의 일부를 블로거에게 나눠주는 구조였어요.”

스타일세이즈는 창업 초기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순식간에 100여명의 블로거를 모았으며 이용자는 100만명을 넘었다. 사업이 예상보다 잘 되자, 김 대표는 스탠퍼드 대학원을 자퇴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거의 통보하다시피 자퇴 사실을 알렸는데,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흔쾌히 승낙했다.

스타일세이즈가 설립된 지 3개월이 지난 뒤, 핀터레스트에서 인수 제의를 했다. 핀터레스트는 사용자들이 쇼핑과 맛집 등 다양한 주제의 사진을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SNS다. 스타일세이즈에 인수를 제안했을 당시 이용자 수가 약 500만명 수준이었으며 기업 가치는 1000억원이 채 안 됐다.

-핀터레스트의 인수 제의를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때는 제가 거만했어요. 핀터레스트의 사업 모델을 저평가했던 거죠(웃음). 그런데 지금 핀터레스트 기업 가치가 약 12조원까지 높아졌어요. 우리가 만약 핀터레스트 지분을 받고 회사를 넘겼더라면 적어도 1000억원은 벌 수 있었겠죠.”

스타일세이즈는 핀터레스트에 인수 제의를 받을 무렵 엔젤(개인) 투자 15억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연쇄 창업가이자 엔젤 투자자로 유명한 노정석 리얼리티리플렉션 최고전략책임자(CSO)도 이 때 스타일세이즈 투자에 참여했다.

그러나 스타일세이즈의 사업 모델에는 김 대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맹점이 있었다. 우선 패션 분야에 국한된 이미지만 다루다보니 사용자 증가에 한계가 있었다. 또, 한국에서는 지역 간 배송이 오래 걸리지 않는 반면 미국은 면적이 워낙 넓어 전국에 3개 이상의 물류 창고를 둬야만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배송할 수 있었다. 벤처 기업이었던 스타일세이즈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약 3년 반 동안 스타일세이즈를 운영하던 김 대표는 사업 모델을 유통에서 광고 플랫폼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다.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선 자금을 수혈 받아야 했지만 추가 투자 유치는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4년 12월, 스타일세이즈의 문을 닫을지 대출을 받아서라도 회사를 살릴지 기로에 서있던 김 대표는 결국 돈을 빌리기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그 시기를 사업을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들었던 때로 기억한다.

-사업 자금은 대출 받았습니까.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갔는데 대출을 거절 당했어요. 미국에 5년 간 머물다 왔더니 한국 신용등급이 6등급이었거든요. 그렇다고 저축은행에서 빌릴 순 없었어요. 이자율이 22%에 육박했습니다.”

김 대표는 국내 신용 대출 시장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중금리 대출 시장을 잘 개척한다면 좋은 사업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미국에서는 P2P(개인 대 개인) 금융 업체 ‘렌딩클럽’이 막 상장한 직후였다. 결국 그는 캘리포니아의 집에 쓰던 짐을 그대로 둔 채 한국에 정착, 이듬해 3월 P2P 금융 업체 렌딧을 창업했다. 공동 창업자로 삼성화재 출신 김유구·박성용 이사가 합류했다.

P2P 금융 업체란 소액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중개 업체를 말한다. 투자자들은 대출 이자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고, 돈이 필요한 사람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보다 낮은 금리에 대출 받을 수 있다. 렌딧의 대출 금리는 최저 연 4.5%다.

렌딧은 창업 후 한 달 뒤인 4월 미 실리콘밸리 투자사 알토스벤처스로부터 15억원을 투자 받았다. 알토스벤처스는 재미교포인 한킴(김한준) 대표가 이끄는 벤처캐피털이다.

김성준 렌딧 대표이사

-투자를 빨리 유치했네요.

“한킴 대표와는 미국에서부터 알던 사이에요. 스타일세이즈를 운영할 당시 투자를 부탁하려고 알토스벤처스를 찾아갔는데, 김 대표가 ‘패션 분야를 잘 몰라 아내에게 물어봤는데, 여자들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옷이나 가방을 사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반대해 투자를 해줄 수 없다’며 거절했어요. 스타일세이즈는 투자를 거절 당했지만, 그 인연이 렌딧으로 이어져 투자를 받게 됐죠.”

-렌딧도 인수 제의를 받은 적이 있나요.

“두 번 받았어요. 어느 회사인지는 못 밝히겠네요. 핀터레스트에 회사를 매각하지 않은 건 실수였지만(웃음), 지금은 매각하지 않고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인수합병(M&A) 대신 상장에 도전할 거에요.”

-한국 증시에 상장할 계획인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언제 어느 시장에 상장할지는 현재 시점에서는 먼 얘기에요.”

-스타일세이즈 운영 자금이 필요해 입국했다가 렌딧을 창업했는데, 그럼 스타일세이즈는 어떻게 됐나요.

“렌딧을 창업한 후 청산했어요. 아쉽지만 스타일세이즈는 문을 닫고 렌딧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만약 스타일세이즈를 성공적으로 매각했더라도 또 다시 창업했을까요.

“P2P 대출 사업은 아니더라도, 다른 창업은 했을 것 같아요. 렌딧이 상장을 하더라도 저는 또 다른 사업을 할 거에요. 렌딧을 통해 보험이나 자산 운용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거나, 아니면 1/2 프로젝트를 제대로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창업에 도전할 때 꼭 명심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산업 동향과 유행을 좇으며 창업하면 안 돼요. 물론 업계 동향을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문제를 혁신적으로 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제가 P2P 금융 사업을 하는 이유가 핀테크의 유행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제가 창업한 이유는 중금리 대출의 어려움에 대해 스스로 공감했기 때문이에요. 창업하고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산전수전 다 겪게 됩니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버티기 위해서는 스스로 관심 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