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라는 명칭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공식 컨트롤 타워를 만들었다. 특정한 경제 이슈를 주제로 장관들끼리 모이는 공식 회의체를 만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조선·해운 업종을 중심으로 환부를 도려낸 다음, 차세대 산업을 육성해 새살을 돋게 하는 작업을 범정부 차원에서 밀고 나가는 과정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채권 금융회사들 차원을 넘어 거시경제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산업계를 재편할 생각"이라고 했다.
◇경제부총리가 이끌어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는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직접 주재한다. 그동안 유 부총리는 구조조정 이슈와 관련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맡겨두고 한발 물러서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번에 컨트롤 타워의 수장으로 직접 키를 잡게 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에만 맡겨두면 구조조정이 채권, 채무 관계를 정리하는 쪽으로 의미가 축소될 수 있다"며 "부총리가 책임지고 산업 개혁을 위해 전면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 외에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이 컨트롤 타워의 참석 멤버다. 회의는 한두 달에 한 번씩 개최될 예정이지만, 3개 분과로 나눠 실무진끼리 물밑에서 자주 만날 예정이다. 구조조정의 방향을 세우는 기업구조조정 분과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맡고, 중장기 산업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산업구조조정 분과는 주형환 산업부 장관이 주재한다. 예산·세제 지원을 담당하는 경쟁력강화지원 분과는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이 담당하기로 했다.
이번에 컨트롤 타워를 세운 것은 청와대 서별관이라는 밀실(密室)에서 이뤄지던 논의를 양지로 이끌어낸다는 의미도 있다. 서별관회의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지원 과정을 비롯해 매번 의사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질타를 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장 서별관회의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더이상 서별관에서 구조조정과 관련한 논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가 공식 회의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대통령 훈령으로 운영규정을 제정했다. 기재부의 한 간부는 "기존 경제관계장관회의는 워낙 다양한 안건들을 다루기 때문에 구조조정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구조조정에 돌입했지만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비판을 수용했다"고 했다.
◇조선·해운 다음은 철강·유화·건설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실적 부진과 과잉 생산에 시달리는 업종을 축소하는 1단계와 미래산업을 육성하는 2단계까지 2년 안에 속도전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컨트롤 타워는 조선·해운업종에 대한 치료를 마무리하는 대로 과잉 생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철강·유화·건설 업종에 대한 교통정리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오너 있는 기업들에 찢어라, 붙여라 하는 소위 '빅딜'을 할 수는 없겠지만, 예전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운 업종이므로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지 않도록 효율을 높이는 작업을 유도할 것"이라고 했다. 인수·합병(M&A), 비주력 분야 매각, 사업부 맞교환 등을 권장하고, 이런 체질 개선 작업에 의지가 있는 기업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돕겠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구조조정 컨트롤 타워는 사물인터넷, 차세대 에너지, 스마트카, 바이오 의약품 등 신산업을 키우는 전략도 수립할 계획이다. 그동안 산업계에서 기관차 역할을 해온 조선·해운·철강·유화·건설 업종의 규모를 축소시킨 만큼 다른 분야를 키워 전체 산업 규모가 왜소해지지 않게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호승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선진국에서 해외로 나간 제조업체들이 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이 확산되고, 중국 경제의 자급률이 높아져 세계 교역량이 줄어드는 등 세계의 경제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흐름에 맞춰 우리도 새로운 틀을 잡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부총리가 조타수가 되기로 한 이상 욕을 먹고 힘이 들더라도 목숨 걸고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라며 "노동계 요구에 따른 정치권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