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회사들은 우리를 더 이상 '팩토리(factory·공장)'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도급(下都給) 공장이 아니라, 핸드백의 모든 것을 담은 플랫폼(platform·정거장)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20% 영업이익률의 비결입니다."
핸드백 제조업체인 시몬느는 작년 매출 1조264억원, 영업이익 2001억원을 기록했다. 5년 전보다 매출은 3배, 영업이익은 4배로 늘었다. 이 회사는 마크제이콥스·마이클코어스·DKNY·코치와 같은 유명 브랜드에 한 해 2000만 개의 핸드백을 납품하는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제조자 개발생산)' 기업이다. 하지만 '매출이 늘어봐야 남는 게 없다'는 '하도급의 통설'은 시몬느엔 통하지 않는다. 주문을 내는 웬만한 브랜드 회사보다 오히려 시몬느의 영업이익률이 높다.
박은관(62) 시몬느 회장은 31일 "패션 업체가 아이디어를 갖고 시몬느를 찾아오면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핸드백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며 "우리 회사는 단지 개발·제조·납품하는 하도급 기업이나 ODM을 넘어 세계 모든 핸드백의 '마당·광장·정거장'"이라고 말했다.
시몬느는 현재 핸드백 전문 제조시장에서 세계 1위다. 2~4위인 홍콩 시토이, 유니버설, 대만 야마니는 매출이 2000억~4000억원 정도로 시몬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박 회장은 "경쟁사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단순 제조·납품하는 핸드백 업체와는 더 이상 경쟁 관계가 아니란 것이다.
시몬느는 명품 업체가 핸드백 브랜드를 처음 론칭할 때 브랜드의 정체성(identity)과 가격 정책, 디자인, 제품 소재 등을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다. 박 회장은 "미국 명품 업체인 마이클코어스의 존 아이돌 회장이 14년 전 핸드백 사업에 진출할 때 우리를 찾아와 딱 10분 만에 같이 하기로 합의했다"며 "어떻게 물건을 팔지는 마이클코어스가 맡고, 어떤 제품을 어떻게 만들지는 우리가 담당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마이클코어스는 미국 핸드백 시장의 3대 브랜드로 성장했다.
시몬느의 경쟁력은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 인정할 정도다. 블랙스톤은 작년 6월 이 회사에 3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30%를 확보했다. 블랙스톤이 투자한 첫 한국 기업이다. 박 회장은 "블랙스톤이 처음엔 최대 지분을 요구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블랙스톤이 최대 주주 지위를 포기하면서도 투자한 이유는 시몬느를 세계 명품 시장에 진출하는 거점으로 봤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현재 블랙스톤과 함께 3억~5억달러(약 5950억원) 정도의 명품 브랜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명품업체의 인수는 물론이고 유명 명품 기업의 핸드백 부문만 떼어내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될성부른 기업을 발굴해내는 블랙스톤의 투자 노하우와 시몬느의 제조·개발 능력을 합쳐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시몬느는 '0914'라는 독자 브랜드도 내놨다. "서울에 뿌리를 둔 명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박 회장은 "15년 전엔 도쿄와 홍콩이 아시아 패션과 명품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서울과 상하이"라며 "서울이 해외 명품이 팔리는 최첨단 유행 시장에서 한발 나아가 밀라노나 파리, 뉴욕처럼 명품을 낳는 단계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하나의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15~20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라며 "이 부문에서 향후 7~10년간 적자 낼 계획을 짰다"고 했다.
그는 "산업화의 전통을 잇는 대한민국의 '손의 힘'과 '땀의 가치'를 담은 명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예컨대 600종의 신제품을 각각 15개나 20개씩 한정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개발비를 생각하면 세계 어느 패션 업체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명품 브랜드 전략입니다." 매년 7000개가 넘는 견본제품을 만들어온 노하우가 자신의 브랜드에 녹아들 것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