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7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초미세공정을 놓고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경쟁이 치열하다. 7나노는 머리카락 굵기의 70만분의 1에 해당하는 초미세 회로 선폭(線幅)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는 7나노 공정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사상 최대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했으며 세계 4위 파운드리 업체인 삼성전자는 신규 장비 도입을 서두르는 등 7나노 공정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사가 초미세 공정 경쟁에 나선 것은 애플, 퀄컴 같은 대형 고객사로부터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생산 주문을 받기 위해서다. 연간 2억대씩 판매되는 아이폰에 AP를 공급하면 5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좁을수록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회로를 집어넣을 수 있다. 초미세 공정일수록 반도체의 성능이 좋아지고 원가경쟁력도 높아진다. 7나노 공정의 경우 14나노보다 정보처리 속도는 35%, 전력 효율성은 65% 높다.

방진복을 입은 반도체 생산 라인 직원이 불량 반도체가 없는지 검사하고 있다.

◆ TSMC "2017년 초 7나노 시험양산 "…삼성도 맞불

TSMC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리우(Mark Liu) 사장은 5월 26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연 포럼에서 "올해 R&D 비용으로 역대 최대인 22억달러(약 2조6000억원)를 쓸 것"이라며 “반도체 회사 최초로 7나노 기술을 인증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TSMC는 이르면 내년 초부터 7나노 제품을 양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10나노 공정에 이어 7나노에서도 삼성전자보다 빠르게 신공정을 확보하게 된다. TSMC는 올해 10나노 AP인 아이폰7용 'A10'을 애플에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TSMC와 달리 대외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기술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5월초에는 7나노 진입에 필수적인 장비로 부상한 네덜란드 ASML의 노광장비(EUV) NXE3400을 사들였다고 밝혔다. NXE3400은 한대당 1000억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다. 반도체업계는 삼성전자가 이 장비를 통해 7나노 공정의 칩을 내년 4분기쯤에 양산할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는 현재 LRPI(제한위험공정초기화) 단계를 통해 EUV의 7나노칩 양산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LRPI는 양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변수와 위험을 줄이기 위한 사전 검증 단계다. 삼성전자는 300mm 웨이퍼(반도체 원판) 대신 노후 설비인 200mm 웨이퍼를 쓰는 라인에서 EUV를 적용한 7나노칩 제작에 돌입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10나노 경쟁에서 TSMC에 선수를 빼앗겼던 삼성전자가 7나노 개발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며 "7나노 경쟁에서는 안정성이 높은 삼성전자가 승기를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애플·퀄컴 놓치면 적자 불보듯…사활 건 유치 경쟁

애플과 퀄컴은 대형 파운드리 기업들의 한해 농사를 좌지우지하는 고객사다. 세계 4위 파운드리 업체인 삼성전자에서 애플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80%에 이른다. 애플이 2014년에 A8 물량을 TSMC에 몰아주자,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봤다.

올해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TSMC가 올해 내놓을 아이폰7의 '두뇌'인 A10을 독점 생산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HSBC는 A10 생산에 따른 매출 규모가 22억~2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은 전작 AP인 A9 위탁 생산의 경우 삼성전자와 TSMC에 배분해 맡겼다. 삼성전자가 60~70%를 생산하고, TSMC가 30~40%를 담당했다. 그러나 성능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IT매체는 TSMC가 생산한 아이폰6S용 A9칩의 성능이 삼성전자의 A9칩 보다 일부분 앞섰다는 벤치마크테스트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애플은 이런 이유에서 공급처를 다각화하기 보다 일원화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아이폰에 탑재된 A8칩.

반도체 업계는 새로운 미세공정으로 나아갈수록 파운드리 회사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005930)의 파운드리 사업을 이끄는 윤종식 부사장은 "130나노 공정으로 경쟁하던 시절에는 20여개 이상의 회사들이 있었다"며 "16나노, 14나노 공정에 도달한 현재 주요 회사는 4개 뿐이다. 14나노 이하 공정에서는 경쟁사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는 회사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