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수출 산업인 반도체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이 작년 4분기부터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실적 하락, 재고 증가의 이중고(二重苦)에 빠져들고 있다. 2분기 들어 원화 강세로 돌아선 환율도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두 회사의 반도체 재고량은 각각 7조4024억원, 2조1939억원에 달해 사상 최대 수준에 도달했다. 실적도 하락세다.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5620억원에 그쳐 작년 1분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삼성전자 역시 2조63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작년보다 10%가량 하락했다. 2분기 전망도 밝지 않다. 서울대 이종호 교수(전기공학)는 "업체들의 제조 기술 향상으로 생산량이 늘어난 반면, 반도체를 부품으로 쓰는 스마트폰·PC 등 IT(정보기술) 기기의 판매는 부진해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급 과잉·수요 감소로 당분간 하락세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주력 메모리 반도체 제품인 D램의 평균 판매 가격은 지난달 29일 1.31달러까지 떨어졌다〈그래프 참조〉. 2013~2014년 사이 3달러대 후반까지 올라갔던 것과 비교해보면 3분의 1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D램 시장에서 1·2위를 지키고 있다. PC와 스마트폰의 대용량 저장 장치로 쓰는 낸드플래시 반도체 역시 판매 가격이 1개당 2.02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3년 중반 5.52달러까지 올라간 것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 반 토막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경기도 이천시의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서 직원들이 반도체 공정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의 대표 수출 산업인 반도체 시장은 작년 4분기부터 세계적 불황기에 접어든 데다 실적 악화, 재고량 증가 등이 겹쳐 이중고에 빠졌다.

반도체 시장이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PC·스마트폰 같은 IT 기기 시장의 성장세가 꺾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 1분기 세계 PC 시장 규모가 작년 1분기보다 9.6%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PC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2010년 이후 매년 20% 이상 성장했던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률도 작년 13.1%로 하락한 데 이어 올해는 한 자릿수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새로운 반도체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물인터넷(IoT)·자율주행자동차(무인차)는 아직 상용화 단계까지 도달하기엔 시간이 더 걸린다.

수요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 혁신으로 생산량은 급격히 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회로 선폭(線幅)이 18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인 D램 양산에 들어가고 SK하이닉스·미국 마이크론 역시 20나노 초반급 D램을 제조하면서 생산 물량은 이전보다 20~30% 이상 늘어났다. 제조 혁신이 단기적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는 '혁신의 역설(逆說)'에 빠진 것이다.

중국 업체들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진출도 잠재적인 위협 요소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西安)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중국의 XMC·칭화유니그룹은 정부 지원을 받아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XMC는 이르면 2018년부터 반도체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가 가전제품 같은 곳에 탑재되는 저성능 반도체 시장에서는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3분기 회복 기대… 과거 같은 치킨 게임 없을 것"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르면 올 3분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회복세로 접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애플 아이폰 신제품이 나오는 데다 화웨이·오포·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도 6GB(기가바이트)급 대용량 D램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시장을 3분(分)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치킨 게임(죽기 살기의 가격 경쟁)은 없을 것"이라며 "지난 2~3년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분기마다 조(兆) 단위의 영업이익을 냈기 때문에 불황기를 버텨낼 힘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빅데이터(대용량 데이터)와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시장이 확대되는 것도 긍정적이다. 특히 이 서비스들을 구현하기 위한 대용량 서버에 탑재되는 반도체는 PC·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제품보다 용량도 크고 가격도 비싸다. 삼성전자의 경우 수익성이 높은 고가 제품은 지난 1분기에도 오히려 판매량이 증가했다.

동부증권 유의형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시기이지만, 예전처럼 3년 이상 장기간 불황이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며 "서버용 반도체 같은 고가·고성능 반도체 시장을 공략해 수익성을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