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나섰다. 2011년 8월 정부 권고로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중단한 지 5년 만이다.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옥시)는 50억원 출연 계획을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 홈플러스·롯데마트, 5년 만에 사과… 옥시 50억 출연
김상현 홈플러스 대표는 26일 강서 신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습기 피해자와 가족분들의 아픔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공정한 검찰 조사를 위해 최대한 협조하겠다. 취임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음 아픈 사건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과와 대응이 늦었다면 제 책임이다. 최선을 다해 피해자들과 보상 협의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피해 보상을 위해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전담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의학전문가 등을 포함한 독립 기구를 설치, 정부기관과 협의해 원만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P&G 아세안 총괄 사장 출신으로 올해 1월 홈플러스 대표에 취임했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이사 역시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큰 고통과 슬픔을 겪은 피해자, 가족분들께 많이 늦었지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2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상 업무를 전담하는 ‘피해보상전담팀’ 구성을 마쳤다. 전담팀은 전임 7명을 포함해 19명으로 구성했다. 25일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 종결 직후 피해자들과 피해 보상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피해자 단체 조사 결과 가장 많은 피해자(403명)를 낳은 옥시 역시 21일 사과의 뜻을 밝혔다. 옥시는 “2014년 환경부와 협의를 통해 조건 없이 50억원의 인도적 기금을 기탁했다. 이번에 추가로 50억원을 더 출연하고자 한다”고 했다.
◆ 피해자들 "진정성 없다"… 일반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확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며 반발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은 24일 임시총회를 열고 다수의 피해자를 원고로 모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검찰 수사를 앞두고 검찰에 사과한 것이다. 사전에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 피해자 모임 회원은 “홈플러스는 보상 재원은 물론 보상 시점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사과”라고 했고, 다른 회원은 “사과로 될 일이 아니다. 내 가족이 가습기 살균제로 죽었는데 죄를 묻지 못해 참담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모임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 소속 변호사 등 25명으로 구성한 소송대리인단의 도움을 받아 2주 동안 원고를 모집할 계획이다. 손해배상 소송 외에 옥시 등 가해기업 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피해자 모임 법인화도 추진하기로 했다.
검찰은 26일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를 시작으로 관계자 소환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검찰은 옥시 측이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 성분을 넣은 가습기 살균제를 처음 제조해 판매했고,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다른 업체가 옥시 제품을 본떠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해당 브랜드 불매운동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생활용품에 관심이 많은 주부들이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옥시가 만든 제품 목록,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제품 목록이 돌고 있다.
한 누리꾼은 SNS를 통해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모든 회사, 모든 제품에 대한 안전성검사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들의 검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제품을 불매하겠다는 내용의 손 팻말을 촬영해 SNS에 올린 누리꾼도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1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과 함께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여론조사를 실시, 결과를 공개했다. 응답자의 22%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68.4%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에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는 항목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