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조선(造船) 업종 협력업체가 밀집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는 금요일이지만 일요일처럼 고요했다. 중견급 조선사인 현대삼호중공업 제2 공장에서만 직원들 20~30명이 용접 작업을 벌이고 있을 뿐, 이 공장을 둘러싼 협력업체 공장 6개 중 5개가 멈춰 있었다. 선박 모듈(선박 부분별 덩어리)을 제작하는데 쓰는 대형 크레인은 움직이지 않았고, 공장 안에선 직원 1~2명 정도가 쌓여 있는 기자재를 정리하고 있었다.

대불산단이 멈췄다. 단지에 입주한 업체 300여 곳 중 75%를 차지하는 230여 곳의 조선업종 협력업체들이 원청업체인 조선업체들의 주문 감소로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산단 내 공장 가동률은 60%대까지 떨어졌다. 10곳 중 4곳은 공장을 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야근·주말근무 사라져

4~5년 전만 해도 대불산단은 '밤을 모르는 산업단지'였다. 수년치 일감이 쌓여 있어 공장들이 24시간 내내 돌아갔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불지사는 영산강 너머 3㎞ 떨어진 목포 아파트단지 주민들로부터 "밤마다 '깡깡'하고 쇠를 때리는 작업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는 민원 신고를 받았다. 당시 공단 안에는 은행 지점 3곳이 영업했다. 협력업체들이 생산시설을 확충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대출 상담 창구만 은행마다 10여 개씩 있었다.

22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 대불산업단지에 있는 한 선박 부품업체. 조선업 불황으로 선박 부품과 자재들로 가득 차야 할 공장 앞마당(위)과 내부(아래)가 텅 비어 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민원 신고는 지난해 10월 이후 완전히 끊겼다. 협력 업체들의 야근과 주말근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은행 지점 세 곳 중 한 곳은 출장소로 축소됐고, 직원은 3명만 남았다. 돈 빌려 갈 기업이 없어 대출 업무가 사실상 중단됐다.

"5년 전 구조조정 했더라면 지금처럼 다 죽지는 않을 텐데…"

선박 내관·배관 모듈을 제작하는 A사는 지난 2월 말부터 일감이 없다. 공장 부지는 2만㎡쯤 되는데 출근한 직원은 10여 명 정도였다. 나머지 직원 90여 명 정도는 무급(無給) 휴가를 갔다. A사 사장은 "조선업 구조조정은 이미 5년 정도 늦었다"며 "당시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는데 다들 당장 일감이 넉넉하다는 이유로 멀리 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5년 전 기술력을 갖춘 업체 위주로 구조조정을 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지금처럼 한꺼번에 다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는 정부가 자금을 쥐여준다고 해도 살아남기 어렵다"며 "이미 나무가 말라비틀어졌는데 비료를 주면 무엇하느냐"고 했다.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대불산단 업체들은 대부분 원청업체가 준 설계도 그대로 부품 등을 만들어주는 '임가공'만 한다. 기술력이 부족해 자체 제품은 만들 수 없다.

선박용 내장 부품을 생산하는 B사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2년 전 직원 100여 명이 연매출 200억원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는 직원수 70명에 매출 100억원도 어려울 전망이다. 이 업체 사장은 "신규 수주를 받기 어렵다"며 "올해 3분기에는 대불산단 대부분이 적자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버틸 건지 묻자, 그는 나직하게 "긴축 재정하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6월 이후 공동화(空洞化) 우려

대불산단은 2000년대 후반 조선업 호황으로 성장했다. 울산의 현대중공업, 거제의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에서 일감이 넘쳐나면서 현지 협력업체들만으로는 일손이 모자랐고 대불산단에 조선업 협력업체가 우후죽순 생겼다.

대불산단 고용인원은 2007년 6000여 명에서 이듬해 두 배가 넘는 1만3000여 명으로 늘었다. 이 때문에 목포에서 대불산단으로 가는 도로는 출퇴근 때마다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대불지사 관계자는 "10분이면 갈 거리를 40분씩 걸려서 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동화를 우려하고 있다. 산단 내 수출액은 2014년 12억달러에서 지난해 7억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올해는 3억5000만달러 미만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기준 폐업하고 시설이나 장비, 부지를 매각하려고 추진 중인 곳이 20여 곳에 달한다. 고용인원은 2014년 1만2000여 명에서 지난해 1만1000여 명으로 1000명 가까이 줄었다. 이미 하청업체에 파견 근무하는 원청업체 감독관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가장 큰 문제는 올 6월 이후 일감이 없다는 것이다. 한 중견업체 사장은 "일을 맡기던 주요 조선소들도 일감이 없긴 매한가지"라며 "수주 잔량이 얼마 남지 않자 지금까지 협력업체를 통해 조달했던 모듈과 부품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산단 내 업체들은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 목표지만 전망은 어둡다. 업체들 대부분이 '부실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은행 등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 어렵다.

산업단지공단 이민식 대불지사장은 "인건비는 올랐는데 일감은 줄고 있어 당장 2~3달도 버티지 못할 업체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