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내 셔틀버스 운행해 외국인 관광 관행 근본적으로 개선

벚꽃이 만개한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도로에 대형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있었다. 관광 명소가 된 청와대를 찾은 유커(중국인 관광객) 100여명을 태운 버스들이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하고 청와대 인근 담장을 둘러싼 것이다. 이들 관광버스의 불법 주정차로 청와대와 경복궁을 잇는 도로는 일대 혼잡을 빚었다.

외국인 관광객 급증에 따른 도심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울 종로구가 교통난을 해소하고, 나아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관광을 장려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광화문과 경복궁, 청계천 등 관광 명소가 밀집된 종로구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가장 많은 지자체 중 한 곳이다.

21일 정부와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종로구와 청와대, 국토교통부 산하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최근 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대형 관광버스의 불법 주정차가 서울 도심 내 교통난을 가중시키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관광버스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고, 셔틀버스를 운영해 관광객 이동을 돕는 방안을 협의했다. 협의에 참석한 관계자는 “종로구와 청와대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고, 실무자 차원에서 논의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협의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관광버스의 불법 주정차로 주변 교통 혼잡이 극심해지고 시민의 민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과태료를 물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현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청와대 측은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때문에 경호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차선 도로를 완전히 점령한 외국인 관광객 버스. 지난 10일 서울 남산 산책로 도로 한면에 대형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종로와 중구, 용산, 마포, 서대문 등 도심권 5개 자치구가 대형버스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은 683면(40개소, 4월 개장 예정 포함)에 불과하지만, 이 지역 하루 최대 집중되는 관광버스는 1047대(2015년 기준)에 이른다.

앞으로 관광버스의 도심 점령 문제가 더 극심해질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증가하는 가운데 많은 관광버스가 몰리는 서울 도심 면세점도 늘어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파악하고 있는 시내 면세점 수는 대형 면세점 6곳과 중소형 사후(事後) 면세점 5351곳이다. 올해 연말부터 신규 면세점 5곳이 더 문을 여는데, 이 중 3곳은 도심인 명동, 인사동, 동대문에 들어선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2018년 주차 수요가 하루 1197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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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점을 논의한 참석자들은 관광버스를 도심 밖 지정된 구역에 주차하도록 하는 대신 도심 내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셔틀 버스를 운행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도심 내 주차 공간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관광객들이 전세 버스를 타고 주요 관광명소나 백화점, 면세점만 찍고 돌아가는 지금 관광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런 방침이 현실화될 경우 관광버스 중심으로 이뤄져 온 기존 관광 행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도심 백화점과 면세점 중심인 외국인 관광객의 관광 동선을 바꾸기 위해 도심에 중소규모 로드숍을 조성하고, 관광 명소에 지역 가이드를 배치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백화점과 면세점에 몰리는 외국인 관광객을 도심 로드숍으로 분산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지역 범위가 확대되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지역 가이드를 양성하면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종로구와 청와대의 생각이다.

한편 이번 협의에는 일부 여행업계 관계자도 참석했다. 여행업계는 종로구와 청와대가 주도하는 이 계획이 실행되면 이에 맞는 여행 상품을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이같은 방침에 대한 지역 주민들과 면세점 관계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유커들이 많이 찾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도심 외곽에 관광버스를 세워 놓고, 관광객이 걸어서 도심을 관광하는 외국 사례가 있다”며 “이런 형태의 관광이 활성화되면 노점이나 작은 상점들도 관광객 증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이 지역구 후보들은 선거 기간 내내 관광버스 불법주차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민원에 시달렸다.

반면 수십억원을 투자해 면세점을 운영할 계획인 사업자들은 울상이다. 면세점 중심의 관광 관행에 변화가 생기면 면세점 수익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