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와 야당의 협력 여부는 당장 발등의 불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상선 해법 찾기 과정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상선은 20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2주간 거래 정지'에 들어간다. 부채비율이 2007%까지 치솟아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감자(減資)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주식 매매까지 중단되면서 회생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현대상선은 용선료(선박 임대 비용)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5조768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용선료 1조8793억원을 포함해 운영비가 매출액을 넘어서서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컨테이너선 등 84척을 임대한 그리스 다나오스, 영국 조디악 등 해외 선주(船主)들과 용선료를 20~30% 정도 낮추는 협상을 진행 중인데, 다음 달 정도면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협상이 성과를 내서 채권단의 지원을 받든 협상 실패로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게 되든 어떤 경우에도 강도 높은 자구책을 시행해야 하기 때문에 1200명가량인 현대상선 직원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등 정치권이 정부의 구조조정 원칙을 지지할 것인지가 기업 구조조정 작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대표, 구조조정 전제 조건으로 실업 대책 요구

김종인 대표는 정부의 구조조정에 협력하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김 대표는 "구조조정을 하면 대량 실업이 자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그와 같은 게 제대로 이뤄진다면 더불어민주당도 적극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김 대표는 이날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고선 우리 경제의 중장기 전망이 밝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위원회는 "어려운 조건을 달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야당이 구조조정에 협력할 수 있다는 말은 반갑다"면서도 "실업 대책 등 이런저런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단서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일시적인 대량 실업과 그에 따른 소비 위축, 지역 경제 침체 등을 수반한다. 단기적으로는 성장률 하락도 감수해야 한다. 노조의 반발 등 사회적인 마찰도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야당이 정부·여당과 함께 헤쳐나가려고 할 것인지, 정부 탓만 하던 과거의 행태로 돌아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과거 야당은 기업 구조조정에 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재계 일각에서는 "야당이 '희망버스'나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2011년 인력 감축이 발단이 된 한진중공업 장기 파업 사태 당시 시민단체 등이 주도한 5차례의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을 향했고, 유혈 사태까지 빚었다. 당시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정동영, 천정배 최고위원이 희망버스를 타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총선 후 속전속결 예정이었는데, 야당 협의에 시간 걸릴 수도

정부는 작년 10월 금융위원장 주재로 각 부처 차관급 인사가 참여하는 '산업 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기업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다. 전면적인 구조조정 추진은 정치권의 외풍을 피하기 위해 총선 이후로 D-데이를 잡았었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번 구조조정은 외환 위기 직후와 다르다. 외환위기 당시가 괴사한 부분을 신속하게 절단하는 외과 수술에 비유된다면, 이번에는 정밀한 신경 수술이다. 충격을 최소화하고 살릴 수 있는 기업은 살리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면서 "정치 바람 등 외부 압력이 없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선별적인 협력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노조의 대규모 파업 등이 발생할 경우 발을 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의 예상이다. 한 전직 고위 경제 관료는 "야당이 말하는 실업 대책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과도하게 들어가서는 구조조정이 늦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조조정을 하려면 청와대와 정부, 국회가 따로 놀아서는 안 되고 여야와 정부가 같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가 있어야 한다"며 "13대 국회 때 4당 체제가 되면서 공무원들이 국회 돌아다니느라 일이 안 됐는데 20대 국회가 그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