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신탁형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를 일임형 ISA로 바꿀 수 있나요?"(기자)
"바꿀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신탁형에 담긴 예금을 해약하면 수수료가 발생하고 원금이 줄어들 수 있어요."(A은행 콜센터 직원)
은행의 일임형 ISA 출시를 사흘 앞둔 8일, 국민·기업·농협·신한·우리·KEB하나·SC 등 7개 은행의 콜센터에 ISA 가입자가 궁금해할 질문을 던진 결과, 제대로 답해 주는 직원이 없었다. "신탁형 ISA를 중도 해약하면 예금도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는 A은행 직원의 설명은 틀렸다. 비과세 혜택만 보지 못할 뿐 예금 원금이 손상되는 일은 없다.
#장면2
"ISA 수익률 비교를 어떤 형태로 한답니까? 모델 포트폴리오별, 아니면 은행별로 해요?"
"(모델 포트폴리오별) 가중 평균 수익률이나…. 뭐, 그렇게 될 것 같은데…."
"3개월 후에 계좌 옮길 수 있다고 하잖아요. 계좌이동제 비슷한 거예요?"
"그런 건 아니라던데…."
B은행 본점에서 열린 ISA 회의. 직원들은 '3개월 수익률'의 정의 등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당국이 어떻게 결정하는지 두고 보자"는 말로 회의는 흐지부지 끝났다.
국민 재테크 통장으로 불리는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는 매년 2000만원씩 5년 동안 투자한 돈의 수익금 200만원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상품이다. 연봉 5500만원 미만 가입자에 대해서는 3년간 투자한 돈의 수익금 25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준다. 저금리가 굳어지자 정부는 국민들의 돈 굴리기를 도와주겠다고 비과세 상품인 ISA를 도입했다. ISA에는 투자자가 알아서 상품을 고르는 '신탁형'과 금융회사가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따라 '투자 상품 꾸러미'(모델 포트폴리오)를 정해주는 '일임형' 등 두 종류가 있다.
은행과 증권사에서 지난달 14일부터 ISA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증권사와는 달리 은행에서는 그동안 신탁형만 팔 수 있었다. 오는 11일부터 은행에서도 일임형 ISA를 팔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짧아 은행들이 허둥지둥대는 등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은행 직원, "ISA 갈아타기요?… 잘 모르겠는데요"
지난달 ISA가 출시된 이후 7일 현재까지 134만9107명이 가입했는데 이 중 99%는 은행 고객들이어서 은행에서 판매한 신탁형에 가입한 상태다. 하지만 11일부터 은행이 직접 자산을 굴려주는 일임형 ISA를 판매하기 때문에 이미 은행에서 신탁형 ISA에 가입한 고객들은 이를 일임형으로 바꿀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현재 신탁형 가입자는 해지를 한 뒤 일임형에 가입할 수 있고, 오는 6월부터는 해지 절차 없이 신탁형에서 일임형으로 바로 갈아탈 수 있다.
그런데 본지 기자가 은행 7곳에 신탁형에서 일임형으로 갈아탈 수 있는지 묻자, 3개 은행 직원은 "잘 모르겠다"고 했고, 4개 은행 직원은 "예금이라도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실제로는 비과세 혜택만 없어짐), "예금의 경우 3회 분할 인출이 가능하다"(→예금은 분할 인출할 수 없음), "일임형으로 갈아타도 투자 상품은 가입자가 어차피 일일이 지정해야 하는데 왜 갈아타려고 하느냐"(→일임형은 가입자가 아닌 은행이 투자 상품을 구성함)는 등 한결같이 엉터리 설명을 했다. 일임형 ISA 판매가 코앞에 닥쳤는데, 은행 직원들이 일임형 ISA가 뭔지에 대해 정확히 숙지하고 있지도 못할 정도로 준비 상태가 부실했다.
◇3개월 수익률 공개, 부작용 우려
은행권의 일임형 ISA 판매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은행이 투자일임업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씻기 위해 은행권은 은행 내 자산운용 전문가를 ISA 전담으로 배치하거나,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에서 전문 인력을 스카우트해서 전문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당장 3개월 후 수익률을 공개하게 되어 있어 은행들마다 초반 실적을 어떻게 높일까를 놓고 전전긍긍한다. C은행의 일임형 ISA 담당 임원은 "3개월 수익률이 처음 공개되면 '1등'과 '꼴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일단 좀 위험해도 수익률 높은 상품부터 담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에게 초반 3개월 수익률만 보지말고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에 나서라고 조언한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 실장은 "지금 당장의 수익률은 별로 의미가 없고 2018년까지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두고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