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이후 반등하던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주가가 최근 다시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다.
6일 현대자동차는 전날보다 0.4%(500원) 내린 14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현대차 주가는 지난달 22일 15만9000원을 기록,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른 후 약세를 보이며 9거래일 동안 9.4% 하락했다. 기아자동차역시 최근 6일 연속 하락 마감했다. 22일 이후 9거래일 동안 10.7% 떨어졌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주가가 약세로 돌아선 표면적인 이유는 부진한 1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달 강세를 보였던 달러화 가치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동결 이후 하락하면서 환율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든 점도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 테슬라의 전기자동차인 ‘모델3’가 전 세계적인 판매 열풍을 일으키면서 국내 자동차들의 시장 점유율이 장기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점도 자동차 관련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 모델3, 국내 시장에서도 2000만원대 구입 가능…국내 자동차株에 악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2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2일 오전 7시에 모델3에 대한 예약 대수가 25만3000대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31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모델3가 공개되고 예약 주문에 들어간 지 단 이틀 만에 기존 세계 최다 판매 전기차인 일본 닛산의 ‘리프’가 6년간 기록했던 20만1991대의 판매량을 넘어선 것이다.
모델3는 테슬라가 처음으로 출시한 준중형 전기차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단 6초에 불과한 데다, 한 번 충전으로 346km까지 달릴 수 있어 가솔린 차량과 비교해서도 높은 주행 성능을 갖고 있다.
특히 가격이 3만5000달러(약 4000만원) 수준으로 기존에 테슬라가 내놨던 전기차에 비해 훨씬 저렴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출시 초반부터 이어지고 있는 모델3의 폭발적인 판매 열풍은 현대차와 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는 악재가 되고 있다. 최근 출시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들은 물론 비슷한 가격대의 가솔린, 디젤 차량들의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 시장의 경우 예약 주문을 해도 대기 물량이 많아 실제 인도는 2018년부터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현대차와 기아차의 판매에 영향은 적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출시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모델들이 모델3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 빠른 시일 내 기술 수준 차이를 좁히기 어렵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가 지난달 선보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경우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약 180km로 모델3의 절반 수준이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도 10.2초로 모델3에 비해 훨씬 느리다.
하반기부터 판매 예정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가격은 N트림이 4000만원, Q트림이 4300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받을 경우 각각 2100만원, 240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시판될 예정인 모델3 역시 약 4000만원에서 출발해 보조금 혜택을 받으면 20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 측면에서도 별다른 경쟁력이 없는 셈이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의 브랜드 프리미엄과 함께 디자인 등에서도 모델3는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기차에 비해 월등히 경쟁력이 높다”며 “아이오닉과 곧 출시될 기아차의 ‘니로’ 전기차 등 국내 전기차 모델들은 물론 비슷한 가격대의 가솔린, 디젤 차량들의 판매량 감소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현대·기아차, 1분기 실적 부진 가능성 커…달러 강세 효과도 사라져
올 1분기 현대차와 기아차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큰 점도 주가가 약세로 돌아선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러시아, 중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의 판매량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 들어서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판매량이 늘고 있지만, 광고와 마케팅, 영업사원에 대한 인센티브 등 비용 부담이 커 영업이익이 눈에 띄게 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차의 경우 생산 가동률이 떨어져 자동차 판매량이 감소했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진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금융 부문도 단기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아차도 1분기 우호적인 환율을 고려하면 아쉬운 실적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는 현대차의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 감소한 1조4000억원, 기아차는 7.3% 줄어든 5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러화 가치가 최근 다시 약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수출 비중이 큰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로 반등했던 달러화 가치는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동결 조치 이후 점차 하락하고 있다. 세계 6개국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달 24일 96.17에서 1일 94.61로 하락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자동차 제조사들의 국내·외 판매 실적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데다, 신차 출시 효과도 나타나고 있어 2분기 실적은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문용권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경우 국내 공장의 수출 물량과 해외 공장의 생산량 감소 폭이 3개월째 줄어들고 있다”며 “지난해 말 ‘EQ900’의 출시에 따른 내수 시장의 ASP(평균 판매단가) 상승 효과도 2분기 실적 회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