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소.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세포 배양기 90여대 사이로 파스텔톤의 녹색과 분홍색 실험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임직원 평균 나이가 32세인 회사의 역동적이고 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 직원은 "천편일률적인 흰색 대신 본인 취향에 맞게 가운 색상을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당 1억원에 이르는 2리터(L)짜리 배양기에서는 삼성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는 바이오산업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배양기 속의 세포는 종류에 따라 암, 류머티즘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크론병 등 난치병을 치료하는 단백질을 끊임없이 뿜어낸다. 이 단백질이 주사제 한 병에 수십만원씩 하는 바이오 의약품의 원료가 된다. 지난해 세계 바이오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6조원에 이르고, 2020년이면 343조원까지 가파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삼성이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신약 개발만큼 힘든 복제약 개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바이오 의약품 중 특허가 만료됐거나 만료가 임박한 제품들을 복제한 '바이오 시밀러'를 만든다. 현재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인 '레미케이드', '휴미라', '엔브렐' 등 3가지 바이오 의약품의 바이오 시밀러 개발을 마쳤고,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과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의 바이오 시밀러는 개발 막바지에 왔다. 이 다섯 가지 의약품의 전 세계 매출은 지난해 기준 40조원이 넘는다. 이 중 엔브렐의 바이오 시밀러인 '베네팔리'는 올해부터 한국과 유럽에서 본격적인 판매가 이뤄진다. 레미케이드의 바이오 시밀러도 2~3개월 내에 유럽 판매 허가를 받을 전망이다. 2012년 설립한 뒤 채 4년도 되지 않아 거둔 성과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음에 개발할 바이오 시밀러 7종도 정해져 있고, 일부는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시밀러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년, 비용은 2000억~3000억원 정도가 든다. 살아있는 세포가 계속 똑같은 의약품을 만들게 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우선 동물 세포가 단백질을 많이 만들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뒤 배양한다. 배양된 세포 중 암세포나 관절염을 치료하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세포만 골라낸다. 수십만 마리의 세포 중 겨우 1~2개만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살아있는 세포이기 때문에 세심하게 돌보지 않으면 원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내지 않거나 죽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공정 개발을 맡고 있는 이상민 연구원은 "조그만 배양기에서 시험을 거쳐 정상적으로 자라는지, 단백질을 잘 만드는지 체크한 뒤에 점차 큰 배양기로 옮겨가면서 생산량을 늘린다"면서 "배양기를 옮길 때마다 세포가 죽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고 말했다.
완성된 바이오 시밀러 주사제가 전 세계 어디에서 팔릴지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기온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도 필수다. 자동차 개발을 위해 극한의 상황에서 주행 시험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바이오 메카로 떠오른 송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자리 잡고 있는 송도는 세계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이곳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동아쏘시오홀딩스, 바이넥스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송도 전체의 바이오 시밀러 생산량은 33만L로 미국 캘리포니아 바카빌(34만L)에 이어 세계 2위이다. 2018년 18만L 규모인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이 완공되면, 송도는 총생산량 51만L의 세계 1위 바이오 시밀러 도시가 된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시밀러가 선진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아 온 한국적 산업 특성에 잘 맞는 분야라고 평가한다. 김성훈 서울대 약대 교수는 "신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바이오 시밀러도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점하면 스마트폰과 반도체에 이은 국가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시밀러 생산공정이 무균(無菌)과 청정시설이 핵심인 반도체 공정과 유사한 점이 많아 반도체에서 쌓은 노하우를 쉽게 접목시킬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셀트리온 이건혁 차장은 "물과 세포 같은 원료뿐 아니라 배양·포장·출고 등 모든 공정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인도 등은 당분간 따라오기 힘든 분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