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인수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진격의 KB금융'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겠다."

현대증권 인수전(戰)에서 증권가의 예상을 뛰어넘어 1조원 이상을 베팅해 승리를 거머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1일 본지 통화에서 "현대증권 인수로 은행, 보험만이 아니라 금융업 전 영역에서 1등을 회복할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예상보다 3000억원 이상 높은 1조원 이상을 인수 가격으로 써낸 이유에 대해 "반드시 인수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대증권 인수가 단순히 계열 증권사 순위를 3위권으로 올려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한금융지주와의 금융권 '넘버1' 경쟁에 나서기 위한 포석이라고 했다. 윤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KB금융 본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은행의 자본력과 명성, 고객 기반 등을 활용하는 유니버설뱅크(은행·보험·증권 겸업)를 모델로 삼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인수 가격으로 KB가 '승자의 저주'(과도한 인수 비용에 따른 부정적 효과)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체로 "현대증권 인수는 긍정적인 시너지(통합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앞선다.

1조원 베팅한 윤종규 회장, "반드시 인수할 생각이었다"

작년 말 대우증권 인수 경쟁에서 고배를 든 윤 회장은 이번 입찰에서 과감한 베팅에 나섰다. 그는 지난 25일 오후 6시 현대증권 본입찰 마감 직후 주변 인사들에게 "가격이 공개되고 나서 황당한 가격을 써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말을 했다.

윤 회장은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등 대형 M&A(인수·합병)에서 KB의 연이은 실패가 KB맨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점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증권 인수가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라는 공식적인 효과 외에도 '직원들의 사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력(戰力)까지 끌어올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도록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KB 관계자는 "윤 회장이 인수를 진두지휘하면서 입버릇처럼 '직원들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이번엔 꼭 인수하자'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KB금융 이사회도 윤 회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입찰을 할 거면 꼭 성공하라. 가격을 세게 써도 된다"는 메시지를 수차례 윤 회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 신한금융을 겨냥한다

KB금융은 현대증권 인수로 자기자본 기준으로는 신한금융을 앞서게 된다. 윤 회장이 1조원대의 과감한 베팅을 한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KB금융 관계자는 "신한금융의 자기자본은 31조8000억원인데, 현대증권(3조3000억원)을 합칠 경우 KB금융의 자기자본이 32조2000억원으로 신한을 앞서게 된다"고 말했다. 또 신한금융처럼 무게감 있는 증권사를 계열사로 두게 됐다.

KB 금융이 신한에 비해서 부족한 점으로 꼽혔던 포트폴리오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신한금융이 좋은 실적을 보이는 이유로는 사업 포트폴리오가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 꼽힌다. 작년 말 기준으로 신한금융에서 은행 부문 수익 비중은 60% 남짓인데, KB금융에서는 67%를 웃돈다. 증권 부문 비중은 신한이 8%인 데 반해 KB는 3%대다. 윤 회장이 이날 "비은행 부문 수익을 40%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합병 시너지를 감안할 때 1조원은 무리한 금액이 아니며 '승자의 저주'에 빠질 우려도 크지 않다고 본다. 금융시장에서는 KB가 1조500억원을 적어냈다고 가정할 경우, PBR(주가순자산비율: 회사 자산 대비 주가 비율)이 1.41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신한금투). PBR은 1배보다 높을수록 주가가 그만큼 고평가됐다는 의미인데, 미래에셋이 대우증권을 인수할 때 PBR은 약 1.3배였다. 증권가에서는 "PBR이라는 잣대로 비춰본다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대우증권을 2조3000억원에 인수한 것보다 윤 회장이 현대증권을 1조원 넘게 주고 산 것이 더 세게 베팅한 셈"이라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