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4년 6개월 만에 ‘송가 프로젝트’와의 질긴 악연을 끊는다.
대우조선해양은 송가(Songa) 프로젝트 마지막인 4호선 건조를 끝내고, 시운전까지 마친 상태라고 29일 밝혔다. 송가 4호선은 3월 31일 선주 측에 인도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송가 4호선을 인도하면서 최소 3000억원의 미지급 건조 대금을 받는다.
송가라는 프로젝트명은 발주처인 노르웨이 석유 시추업체 ‘송가 오프쇼어(Songa Offshore)’에서 따왔다.
송가 프로젝트는 줄곧 대우조선해양 적자 사태의 주범으로 거론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3년 동안 5조5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송가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손실만 1조원으로 추산된다. 대당 2300만원인 현대차 소나타 4만3400대를 수출한 규모다. 송가는 한국 조선업계 역사상 단일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많은 손실을 낸 프로젝트다.
대우조선해양은 2조4000억원에 송가 프로젝트를 수주해 3조4000억원을 쏟아 부은 셈이다. 한 척당 건조 비용은 예상 금액 6000억원보다 41% 증가한 8500억원이었다. 송가 프로젝트는 결국 대우조선해양을 유동성 위기로 몰고 갔다.
대우조선해양은 송가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손실로 2013년과 2014년 재무제표까지 수정했다. 외부감사인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이 장기매출채권 충당금과 송가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손실을 제 때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적 수정을 권고했다.
각각 4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기록됐던 2013년, 2014년 재무제표는 송가에서 발생한 손실이 반영되면서 적자 전환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송가 프로젝트는 설계 능력 부족으로 공정이 지연되는 와중에 저유가까지 겹치면서 큰 손실을 입게 된 것으로 보인다. 헤비테일 계약 방식도 문제를 더 키웠다. 송가 프로젝트를 보면 한국 조선소가 최근 해양 플랜트 산업에 실패한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다.
◆ 설계 변경만 110차례…외국 기자재 조달에 피해 급증
노르웨이 국영 석유회사인 스타토일(Statoil)은 ‘카테고리-D'라는 노르웨이 대륙붕 중심해 유정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추선 전문 운용업체인 송가 오프쇼어는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석유 시추 공정을 맡았다. 송가 오프쇼어는 대우조선해양에 시추선 건조를 맡겼다.
대우조선해양은 2011년 9월 송가 오프쇼어로부터 극지(極地)용 반잠수식 시추선 2척을 수주한 뒤 2012년 5월 2척을 추가로 수주했다. 계약금액은 한 척 당 6000억원 수준이었다.
당시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영업 담당 상무였던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고 전 사장은 사장 취임 직후 직접 송가 오프쇼어와 계약을 체결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시추선 4척은 스타토일에 8년 동안 장기 용선돼 노르웨이 연안, 북해지역, 극지방에서 운용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계약 체결 직후 발생했다. 사업성 평가와 기본설계 역량이 없는 대우조선해양은 발주처 요구에 따라 설비 설계 경험이 거의 없는 유럽 지역 중소 설계업체에 기본설계를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타당성 조사와 기본설계 단계는 필요 기자재까지 선정되는 핵심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해양 플랜트의 경제적 타당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점을 사전 예측하고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송가 프로젝트는 노르웨이 북해 지역에 처음 들어가는 디자인이었다. 설계 경험이 거의 없는 설계업체는 자주 설계를 변경했다. 설계는 110차례나 변경됐다.
기본설계 역량이 없는 대우조선해양은 설계도를 검토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북해 지역에 처음 들어가는 디자인이라 여러 엔지니어들이 설계를 두고 오랫동안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영국 런던해사중재인협회에서 중재를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설계업체에 설계 변경 검토를 요구해도 답변이 돌아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공정은 예정보다 늦어지기 시작했다. 시리즈 네 척은 공정 지연으로 한 척당 평균 10개월씩 인도가 늦춰졌다.
설계 변경으로 공정이 늦어지자 기자재 조달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상선과 달리 해양 플랜트 기자재는 단순 기자재를 제외한 핵심 부품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해 사용한다. 시추선 일종인 드릴십 가격은 한 척당 7000억원인데 핵심 기자재 드릴링 타워 하나 가격이 1500억원이다.
유럽 설계업체들이 기본설계 단계부터 외국 업체에 기자재를 발주하기 때문에 한국 업체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작년 기계연구원 조사 결과 해양 플랜트 전용 핵심 기자재 국산화율은 20%에 불과했다.
설계 변경으로 부품 하나를 바꿀 때마다 시간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곽기호 한국기계연구원 연구원은 “해양 플랜트 핵심 기자재가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현장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기자재 기술 사양 협의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송가 프로젝트 첫 호선에서만 3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나머지 3척에서도 7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 지속되는 저유가에 헤비테일(Heavy-tail) 계약으로 발목 잡혀
계약 체결 당시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던 국제 유가는 공정이 늦어지는 사이 2015년 배럴당 40~50달러대로 떨어졌다. 저유가 지속으로 석유 설비를 운용할수록 손실을 입게 되는 상황이 되자 감독관들의 공정 관리가 엄격해졌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발주업체들이 유가가 높을 땐 설비를 빨리 가져가기 위해 사소한 문제는 지적하지 않다가 유가가 떨어지자 작은 것 하나하나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넘어갔던 부분을 하나 둘씩 지적하자 공정이 전체적으로 늦어졌다”고 했다.
공사 대금 50% 이상을 인도 시점에 몰아서 받는 헤비테일(Heavy-tail) 계약도 대우조선해양의 발목을 잡았다. 헤비테일 계약은 선수금 비중을 낮추고 공사 대금 대부분을 선박 인도 후 받는 계약 방식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건조 대금 대부분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공정 지연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자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 3사는 해양 플랜트 시장이 호황기를 맞자 경쟁적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저가 수주와 헤비테일 방식의 수주를 남발했다. ‘제 살 깎아먹기’식 수주로 피해를 입은 건 대우조선해양 뿐 아니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였다.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7월 영국 런던해사중재인협회에 건조 지연과 추가 비용 발생 책임이 발주처인 송가 오프쇼어에 있다며 손실을 보전해달라는 내용의 중재를 신청했다.
송가 오프쇼어는 계약상 대우조선해양이 모든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며 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중재 결과는 이르면 올해 말에서 내년 초쯤 나올 예정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송가 프로젝트 등 국내 조선업체가 최근 진행한 해양 프로젝트 대부분이 규모가 크고, 발주처도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한 시행착오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대부분을 국내 조선업체가 부담한 상황”이라고 했다.
홍 연구위원은 “유가 상황에 따라 해양 프로젝트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손실이 많이 났다고 손을 떼면 안 된다. 리스크를 면밀하게 판단하지 못한 부분을 좀 더 치밀하게 검토해 꾸준히 해양 프로젝트에 도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