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은 지난 2월말 1240원 부근까지 치솟았다가 최근에는 1160원대까지 내려왔다. 원 달러 환율은 지난 한달 동안 위, 아래로 약 100원 가량의 변동폭을 보였다. 원 달러 환율이 이같이 요동을 치는 것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으로 인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를 평가 절하하면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가 일본은행(이하 일은)과 유럽중앙은행(ECB),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하면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불을 껐던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최근에는 세계 경제의 리스크 유발자로 전락했다는 비난도 심심찮게 들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지난해 시장 변동의 최대 이슈는 중앙은행이었다"며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를 바닥 수준으로 내리고 대규모 자산을 매입함으로써 위험자산에 투자자들이 몰리게 했기 때문에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마이너스 금리, 중앙은행 예치 초과 지준금에 적용…일부 유럽 국가는 기준금리 마이너스

중앙은행의 신뢰성에 물음표를 던지게 한 대표적인 정책은 마이너스 금리다. 일본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국제금융시장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로 인해 경기가 회복되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은 반면, 마이너스 금리를 사용해야 할 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불안만 조장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국가는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유로존, 일본 등이다. 덴마크 중앙은행이 2012년 7월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운용했고, ECB(2014년 6월),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2014년 7월), 스위스 중앙은행(2014년 12월), 일본은행(2016년 1월) 순서로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했다. ECB와 일본, 일부 유럽 소(少)국들이 마이너스 금리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를 운용 중인 유럽중앙은행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왼쪽)과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오른쪽) 총재

이들 국가에서 운용되는 마이너스 금리는 주로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하는 지급준비금에 적용된다. 지급준비금이란 시중은행들이 예금 등으로 수취하는 자금의 일정 비율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정해진 필요 지급준비금을 초과하는 예치금(초과 지준금)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이 이자를 지급했는데, 여기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게 되면 은행이 중앙은행에 이자를 지급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일종의 보관료를 내는 개념이다.

국가별 운용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ECB는 중앙은행 예치금 중 초과 지준금 전체에 대해서 마이너스 금리(-0.40%)를 적용한다. 정책금리는 0%다. 일본은 초과 지준금 중 전년도 평균잔액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0.1%의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다. 일본은행(BOJ) 등에 따르면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는 중앙은행 예치금은 약 23조엔(20억38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운용하기도 한다. 스위스는 필요지준금의 20배가 넘는 부분만 마이너스 금리(-0.75%)를 적용하고, 통화량 조절수단으로 활용하는 시장금리(3개월물) 목표치를 -1.25~-0.25%로 운용하고 있다. 스웨덴은 정책금리인 레포(repo)금리를 -0.50%로, 중앙은행 예치금에 적용되는 대기성 수신금리는 -1.25%로 운용 중이다. 덴마크는 금융기관 예치금 중 양도성 예금에만 마이너스 금리(-0.65%)를 적용 중이다.

◆ “돈 값 떨어지면 돈 쓰려는 습성 강해질 것”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중앙은행 예치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은행 등 법적으로 예치해야 하는 자금 이외 나머지 자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고 대출 등을 통해 민간에 공급할 것이라는 논리에 근거한다.

마이너스 금리는 벨기에 태생 독일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게젤은 “시장 금리가 경제성장을 의미하는 실질자본 증가의 발목을 잡는다”고 주장했다. 금리가 높으면 돈을 보유하려는 습성이 강해져서 실질자본(공급)이 쉽게 늘지 않는다고 봤다. 마이너스 금리를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면 돈을 사용하려는 습성이 강해지고 이로 인해 실질자본이 늘어나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는 게 핵심 논리다. 이 같은 게젤의 이론은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비중 있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렇게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은행 등에 고여있는 자금이 시중에 흐르게 되면 자금 수요가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게 되고, 수요가 살아나 물가상승률이 올라가는 등 디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논리에 따르면, 금리를 플러스 수준에서 아무리 낮게 낮춰도 대출 등을 통해 시중에 공급되는 자금이 늘지 않은 ‘유동성 함정’은 극복 가능하다.

이에 대해 임광택 한국투자신탁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다는 것은 중앙은행에 자금을 예치하려는 시중은행에 페널티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를 통해 시중에 통화를 창출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마이너스 금리의 실물 경기부양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지금까지의 실증 결과다. ECB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2014년 6월 이후 유로존의 20개월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1%에 불과했다. 이중 5개월은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을 나타냈다. 돈의 가치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려도 수요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 “마이너스 금리는 환율전쟁 부산물…근린궁핍화 정책”

경제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규정한다. 통화가치 절하를 통해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 이는 자국의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경제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근린 궁핍화(近隣窮乏化-beggar my neighbor)' 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머빈 킹 전 영국은행(BOE) 총재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의 중앙은행들은 본질적으로 환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덴마크와 스웨덴, 스위스 등 유로존에 속하지 않는 유럽 소국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은 ECB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자국 화폐 가치가 상대적으로 절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지난 1월 이후 엔-달러 및 달러-유로 환율 추이

일각에서는 양적완화정책(채권 등 자산 매입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마이너스 금리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을 지목한다. ECB와 일본은행은 자산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서 유로화와 엔화를 약세로 유도하는 정책을 실행했는데, 양적완화가 장기화되면서 국채 매입 중심의 정책의 효과가 반감됐기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가 대안으로 부각됐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간된 해외경제 포커스에서 “일본 정부의 장기국채 발행물량이 일본은행의 매입규모에 비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양적완화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제한되고 있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엔화가 강세로 전환하고 주가가 하락하는 등의 금융시장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 전격적인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 결정됐다”고 분석했다.

ECB 역시 지난 1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와 중앙은행 예치금리를 각각 0.0%와 0.40%로 내리면서 국채 매입 한도를 현행 600억유로에서 800억유로로 확대하는 한편, 유로화 표시 회사채를 매입 대상에 포함시켰다.

◆ “마이너스 금리폭 확대되면 경기부양에 역행할 수도”

최근 국제금융계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는 잘 나타나지 않는 반면, 금융시장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로 지역 은행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진 것이 대표적이다. 모간스탠리는 마이너스 금리로 인해 유로지역 은행들의 수익이 5~10%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시중은행들이 중앙은행에 지급하는 역(易)금리를 고객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쉽지 않고, 국채금리가 마이너스로 하락하면서 보유 채권 수익이 감소하기 때문에 이런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중앙은행의 대표격인 BIS(국제결제은행)이 이 같은 비판의 선봉에 섰다. BIS는 이달초 발표한 정책보고서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도입됐음에도 시중은행이 기업과 가계에 빌려준 돈의 이자는 여전히 플러스여서 정책의 효과가 희석됐다”면서 “시중은행의 순이익이 마이너스 금리 때문에 줄어들어 자금 중개 기능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시중은행 실적이 나빠져 대출 능력이 떨어지면 신용창출 기능이 위축된다"며 "(이로 인해) 기준금리 조절 등 통화정책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이너스 금리가 확대되는 것이 경기부양에 부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폭의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 대출금리를 하락시키고 실물경제에 대한 신용창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마이너스 폭이 확대되면 은행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대출금리 하락과 대출 확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자수익이 감소할수록 은행들이 대출태도가 보수적으로 변할 수 있고, 은행들이 소비자에게 이자수익 감소로 인한 손해를 전가할 경우 대출금리가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중에 자금을 흘러가게 하기 위해 도입된 마이너스 금리가 오히려 자금공급을 억제하는 역설이 일어날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덴마크 및 스위스에서 마이너스 금리폭이 확대된 2015년 이후 오히려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신용창출이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ECB의 경우에도 정책금리를 -0.30% 로 추가 인하한 후 비금융기관 대출과 금융권 가계 대출이 위축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