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정보기술) 업체에서 일하는 A씨. 그의 스마트폰에는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페이스북' 등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런 앱은 업무 시간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그가 업무 시간에 주로 쓰는 메신저는 '슬랙'(slack), 일정 관리 프로그램은 '트렐로'(trello) 등 생소한 앱이다. 팀원들과는 슬랙을 이용해 소통하고 관련 자료들도 슬랙에 업데이트한다. 또 중요한 미팅 일정이나 프로젝트 일정 등은 슬랙과 연동된 트렐로에 저장해 팀원들과 공유한다. 친구들과 사적으로 쓰는 메신저는 카카오톡, 회사에서 공적으로 쓰는 메신저는 슬랙으로 구분해둔 것이다.

최근 들어 IT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용 메신저 열풍이 불고 있다. 기존에도 사내 메신저를 쓰는 회사가 많았지만, 대부분 PC용 메신저였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에도 사내 메신저는 PC용에 머물러 있어 불편이 많았다. 최근에는 국내외 업체들이 기업용 메신저를 대거 출시하면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기업용 메신저 ‘슬랙’. 구글 드라이브, 드롭박스 등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해 쓸 수 있다.

기업용 모바일 메신저 전성시대

기업용 모바일 메신저 중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는 미국의 슬랙이다. 한국에서도 사용자가 늘고 있다. 슬랙은 사용자가 계정을 만들고 대화방을 만들면 모든 팀원이 한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보고서, 회의 내용 등을 공유할 수 있다. 또 내부에서 소규모 회의를 소집해서 별도로 논의할 수도 있고, 일대일 대화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팀원 전원이 공유할 파일, 몇몇과만 공유할 내용 등을 나눠서 관리하기도 쉽다. 예를 들어 공유해야 할 프레젠테이션 파일이 있으면 이를 공용 대화 채널에 올려서 함께 보고 의견도 곧바로 나누는 식이다. 슬랙은 최근 하루 평균 사용자가 230만명에 달했고, 작년에만 6400만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미국의 야머(Yammer) 역시 인기가 높은 기업용 메신저다. 2008년 창업해 기업용 모바일 메신저 1세대로 꼽히는 야머는 이메일을 열지 않아도 정보를 바로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 문서 공유 등 협업 서비스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야머는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12억달러에 인수됐고 현재는 문서 제작 프로그램인 '오피스365'팀 소속이다.

힙챗은 채팅 기능을 강화해 경쟁력을 키운다. 그룹 채팅이나 일대일 영상채팅도 지원한다. 힙챗 사용자가 아니더라도 웹페이지 주소(URL)만 공유하면 외부인들도 채팅에 참가할 수 있다. 또 트위터, 구글 클라우드 등 80여개 프로그램을 힙챗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업무 효율 높이고 사생활과 분리

이런 기업용 메신저가 각광받는 이유는 우선 직장인들의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데다, 직장과 사생활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직장인은 카카오톡, 라인 등 일반 모바일 메신저를 업무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사생활과 분리가 되지 않는 데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로 출시된 서비스가 아니다 보니 파일 정리, 공유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업용 메신저를 활용하면 업무는 모두 특정 메신저로 집중시켜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

슬랙, 힙챗 등 기업용 메신저들은 각종 소프트웨어와 쉽게 연결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슬랙의 경우 구글 드라이브, 드롭박스 등 파일 공유·저장 프로그램부터 모바일 결제 서비스 '스트라이브', 화면 공유 서비스 '스크린히어로' 등을 연계해 쓸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런 소프트웨어는 무료다. 유료 버전도 있지만, 무료 서비스만으로도 충분히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기업용 내부 메신저나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거액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것과 달리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 등에서 내려받아 설치하기만 하면 된다. PC에도 설치하면 스마트폰·PC 양쪽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제공하는 기업용 메신저·플랫폼 서비스인 ‘앳워크’.

몸값 올라가는 기업용 메신저, 대기업들도 대거 진출

기업용 메신저 업체들의 몸값은 계속 치솟고 있다. 슬랙은 작년 기업 가치가 28억달러로 책정됐지만, 올해는 40억달러로 40% 이상 상승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회사를 80억달러에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기업용 SNS '워크챗'을 작년 11월에 출시한 데 이어 업무용 그룹 서비스 '앳워크'도 선보일 계획이다. 앳워크는 기업 직원들끼리 가입하는 비공개 그룹을 만들고 여기서 업무를 처리하는 서비스로 알려졌다.

카카오가 준비 중인 기업용 메신저 ‘아지트’.

한국의 카카오 역시 폐쇄형 그룹 서비스였던 '아지트'를 기업용 메신저·그룹 서비스로 개편해 출시한다. 아지트는 팀·단체별로 그룹을 만들고 채팅, 알림, 정보 공유 등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그룹의 아지트가 마련되면 A그룹 직원들이 게시판 안에서 서로 자료도 공유하고 일정도 알리는 식이다. 이 중 B라는 팀만 별도로 비밀 내용을 공유할 때에는 그룹 안에서 새로운 게시판을 만들면 된다. 이미 카카오는 사내에서 아지트를 활용 중이며 이달부터 외부에도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스트소프트 역시 '팀업'이라는 기업용 메신저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사내 게시판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면서도 외부 업체들과도 공유할 부분은 손쉽게 개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스타트업(창업 초기 벤처) 중에서는 '잔디'라는 이름의 업무용 메신저를 만든 토스랩이 주목받는다. 현재 잔디는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시장에서 약 2만여개 기업이 활용 중이다. 주로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중소기업 등이 고객이다. 이 회사는 작년 미국 퀄컴의 스타트업 경연대회인 '큐프라이즈'에서 우승하며 5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