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에도 시장 금리가 계속 하락하면서,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0%대까지 떨어졌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일부터 KB퇴직연금정기예금 및 Wise퇴직연금정기예금의 기본금리(1년 만기·3개월 회전)를 연 1.05%에서 0.85%로 낮췄다. 1년 만기 상품이 0%대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금 이자가 쥐꼬리 수준이 됐지만, 마땅한 대안을 못 찾은 투자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은행 정기예금에 돈을 넣고 있다. 9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수신 잔액은 1401조6000억원으로 1월보다 13조4000억원(1%)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예금만 고집할 게 아니라,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같은 절세형 금융 상품을 적극 활용하고, 해외 주식형 펀드 등 '예금 금리+알파(a)'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상품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다.
◇0%대까지 하락한 정기예금 금리
KB국민은행뿐 아니라 KEB하나·신한 등 다른 은행들도 지난달 후반부터 정기예금 금리를 1% 중반에서 1% 초반으로 낮추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4일부터 일반 정기예금과 YES큰기쁨예금의 1년 만기 금리를 1.3%에서 1.2%로, 신한은행은 지난달 12일 월복리정기예금 금리를 1.56%에서 1.45%로 인하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우대 적금 금리도 크게 떨어졌다. 신한은행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신한 새희망적금'의 금리를 지난 4일부터 연 4.25%에서 연 3.00%로 떨어뜨렸다.
은행들이 이렇게 금리를 낮추는 이유는 시장 채권 금리가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예·적금 금리는 은행채 금리에 가산금리(스프레드)를 얹어 산출한다. 한은 기준금리가 작년 6월 사상 최저(연 1.5%)로 인하된 이후 지난달까지 8개월째 동결됐지만, 채권 투자자들은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베팅해 시장 금리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작년 말 1.7%대 초반이었던 은행채(AAA등급) 1년물 금리는 7일 1.552%까지 떨어졌고, 1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한은 기준금리(1.5%)보다 낮은 1.4%대다.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채권 전문가 10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10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전월의 1%에서 27.5%로 껑충 뛰었다.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수출 급감 등 경기 부진을 감안할 때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며 "만약 한은이 금리를 내리지 않더라도 시장 금리 하락세는 4월 초까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출 금리는 은근슬쩍 올려
은행들은 예·적금 금리는 시장 금리 하락 추세에 따라 내리면서도 대출 금리는 반대로 슬금슬금 올리고 있다. 지난 2월 말 현재 은행들은 1%포인트 이상의 가산금리를 책정하는 식으로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은행들은 영업비밀이라며 가산금리의 정확한 산정 근거를 공개하지 않는다. 은행의 이런 꼼수에 따라 작년 10월 연 3.06%였던 은행 평균 대출 금리는 계속 올라 지난 1월 3.28%를 기록했다. 은행들은 "대기업·개인 등 차입자들의 신용도가 나빠지면서 저(低)신용자 정리 목적으로 대출 금리를 높였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은행들이 이자수익을 더 늘리기 위해 예대 금리 간 격차를 더 벌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자소득이 주수입원인 은퇴자 등 은행 고객들은 "가뜩이나 예금 금리가 낮아 투자할 데도 없는데 대출 금리는 은근슬쩍 올리는 행태가 얄밉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요즘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선 예금만 고집해선 답이 없다고 말한다. 오는 14일 출시되는 ISA와 지난달 말부터 비과세 제도가 적용된 해외 주식형 펀드 같은 절세형 금융 상품을 최대한 활용해 실질 수익률을 올리고,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중위험·중수익 상품, 해외 투자 상품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ISA는 해당 계좌에서 5년 동안 발생한 모든 손익을 합산한 운용수익 200만원에 대해 비과세된다. 해외 주식형 펀드는 국내 거주자가 증권사·은행·인터넷 등으로 해외 주식에 60% 이상 투자하는 310개 상품에 신규 가입하면 1인당 투자액 3000만원에 한해 10년간 얼마의 차익이 나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환(換)차익도 비과세된다. 이기우 KEB하나은행 청담동 골드클럽 센터장은 "증시가 많이 떨어져서 주가연계증권(ELS)을 저점에서 매수할 수 있는 시점"이라며 "미국·유럽·원유 등 해외 주식형 펀드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