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이 '경기(景氣) 불확실성'과 '저성장 공포'에 빠져 있다. 새해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30개 대기업 가운데 올해 투자 규모를 '확정하지 못했거나 동결·축소하겠다'는 곳이 67%(20곳)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다수 대기업은 또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한국은행 공식 전망치(3%)에 미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수출이 사상 처음 14개월 연속 감소(전년 동월 대비)할 게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정치권이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경제 활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본지가 28일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30개 대기업 핵심 경영자를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올해 투자 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기업은 7개사(23%)로 밝혀졌다. 이는 보통 기업이 투자 계획을 전년도 말이나 늦어도 1월에는 확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지난해보다 투자를 '줄이겠다'가 5곳(17%), '동결하겠다'가 8곳(27%)이었다.

불확실성은 채용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30개 대기업 중 12곳(40%)은 '채용 규모를 정하지 못했다'고 밝혔고, 채용 계획을 확정한 18곳 가운데 '채용 확대'는 7곳뿐이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수준의 채용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안팎의 경제 상황이 만만찮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부터 만 60세로 정년이 연장돼 인건비 부담이 커진 만큼 기업의 신규 채용 문이 더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들 대기업은 현 상황을 공격적으로 '돌파'하기보다 수비형 '생존'으로 대응하고 있다. 올해 경영 기조에 대해 '현 상황 유지·구조조정'이라는 응답(13곳·43%)이 '신사업 발굴'(7곳·23%)을 압도한 것이다.

국내외 향후 경기 전망도 비관론 일색이다. 30개 대기업 중 93%(28곳)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3.0% 미만'으로 예상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투자와 채용, 인수·합병(M&A)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한국 대표 기업들의 자신감과 활력이 유례없이 크게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