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 침체 여파로 자영업자 소득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줄었고, 전체 가계소득 증가율은 6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소득은 거의 늘지 않고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바람에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처분가능소득 가운데 소비지출에 쓴 돈의 비중)은 역대 최저인 71.9%를 기록했다. 100만원 벌어 71만9000원 썼다는 얘기다. 그 결과 가계수지 흑자가 역대 최대치로 늘어나는 '불황형 흑자' 현상이 심화됐다. 수출이 1월부터 13개월 연속 급감하는 가운데, 소비심리마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올해 한국 경제는 수출 부진에, 소비 절벽으로 인한 내수 부진까지 극심할 것으로 우려된다.

평균소비성향 역대 최저치로 하락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15년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가구당 437만3000원으로 1년 전보다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계소득 증가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1.2%) 이후 가장 낮았다. 월급쟁이들이 벌어들인 근로소득은 1.6% 늘었지만, 자영업 부진으로 사업소득이 1.9% 줄었다. 사업소득이 줄어든 것은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작년 자영업자 수는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5년 만의 최대폭(8만9000명)으로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소득은 0.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소득은 거의 제자리걸음인데도 지난해 가계 흑자(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것)는 월평균 100만원으로, 1년 전(94만7000원)보다 5.6%나 늘었다. 가정마다 씀씀이를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가구당 소비지출은 월평균 256만3000원으로 1년 전보다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역대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 소비지출은 오히려 0.2% 줄었다.

소득분위별로는 상위 20%인 5분위의 월평균 소득이 817만6800원으로 1년 전보다 상승률(0.6%)이 가장 낮았다. 반면 하위 20%인 1분위 소득은 153만2200원으로, 가장 높은 증가율(4.9%)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4.22배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득 격차가 다소 좁혀졌다는 뜻이다. 김보경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기초연금과 공적연금 같은 정부의 복지 지출이 늘어난 데다 경기 둔화로 고소득층의 사업소득 증가율이 낮아져 소득 격차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주거비 부담에 의류·신발 소비도 줄어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가정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바람에 주거비나 식료품비 같은 꼭 필요한 지출만 늘었지, 옷·신발 구입도 줄었다. 작년 가구당 주거·수도·광열비 지출은 월평균 27만7000원으로 전년보다 4.8% 늘었다. 육류(6.7%)와 채소·가공품(4.3%), 보건비(3.6%) 지출도 늘었다. 반면 의류·신발 지출에 쓴 돈은 월평균 16만2000원으로 1년 전보다 4.4% 줄었고, 교육비 지출도 소폭(0.4%) 감소했다.

기획재정부는 작년 소비 부진에 대해 "메르스 사태로 작년 3분기 소비 지출이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했던 충격이 컸다"면서 "작년 4분기에는 개별소비세 인하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정책 효과에 힘입어 소비 지출이 1.7% 증가세로 회복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시적 요인보다 고령화와 저성장 같은 구조적 요인이 크다고 지적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개별소비세 인하 같은 대책은 미래 소비를 앞당겨 쓰는 것으로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다"면서 "소득과 직결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소비자들이 노후나 미래에 대해 갖는 불안감을 줄이고 경기 전망에 대한 기대를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