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해 매달 34만원씩 총 1300만원 정도를 납입한 직장인 A씨는 최근 목돈 들어갈 일이 생겨 중도 해지를 문의했다가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 해지 수수료를 물고 지금까지 연말정산 때 돌려받은 세금 등을 토해내고 나면, 되돌려받는 돈이 700만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노후 수단이자 절세 상품인 연금저축이 많은 직장인을 울리고 있다. 연금저축은 10~20년 이상 꾸준히 돈을 넣고, 은퇴 후 연금으로 받는 상품이다. 하지만 연금저축 가입자 중에는 중도하차자들이 많다. 그런 경우 A씨처럼 원금 손실 피해를 입는다.
◇연금저축, 10년 이상 유지하는 사람 절반도 안 돼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연금저축 가입자는 545만명에 이른다. 적립한 돈은 107조원에 달한다. 연금저축 상품은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에서 파는데, 보험사(81조원) 점유율이 가장 높다. 정부는 국민연금으로는 부족한 노후 대비 수단을 스스로 마련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연금저축에 절세 혜택을 준다. 연간 400만원 한도 내에서 납입액의 13.2%(최대 52만8000원)를 환급받는다.
하지만 이런 절세 혜택에도 연금저축 유지율은 높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대 생명보험사(삼성·교보·한화) 대표 상품의 경우 10년 전 가입자의 계약 유지율은 58%다. 신한·KB·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의 연금저축 가입자도 10년 전 가입자의 계약 유지율이 51%다. 연금저축 가입자의 절반 정도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 해지하는 것이다.
◇연금저축에 숨겨진 함정
문제는 중도 해지할 경우 다른 금융 상품보다 손해가 크다는 점이다. 중도 해지할 때 연금저축 가입자는 연말정산 세액공제율(13.2%)보다 3.3%포인트 높은 기타소득세(16.5%)를 내야 한다. 2013년 3월 전에 가입한 사람은 가입 후 5년 이내 해지 시 해지가산세(2.2%)까지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연금저축 신탁이나 펀드 상품은 납입 총액에 대해 매년 0.5~0.6% 정도를 사업비로 떼가기 때문에(1000만원 납입 시 연간 5만~6만원·운용수익률은 따로 합산) 그나마 원금 손실이 적은 편이다. 반면 보험형 상품은 매달 납입액의 7~10%를 사업비로 떼가기 때문에 손해가 크다.
직장인 김모(33)씨의 경우, 2년간 총 800만원을 납입한 연금저축보험을 지난해 12월 해지했는데 원금보다 25%가량 줄어든 598만원만 손에 쥘 수 있었다. 해지환급금은 717만원이었고, 이 돈에서 다시 기타소득세(16.5%) 118만원이 부과됐다. 김씨가 2년간 받은 세액공제액(105만원)을 감안해도 김씨는 12%가량(96만원)의 원금 손실을 본 것이다.
보험회사가 사업비를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상품은 원래 계약 초기에 사업비를 많이 떼고, 이후에는 사업비가 계속 줄어드는 구조”라며 “신탁이나 펀드는 계속 늘어나는 적립금 전체에 사업비를 적용하기 때문에 10~20년 이상 장기로 봤을 때는 보험이 총사업비가 더 적다”고 말했다.
◇만기 후 세금폭탄 가능성
게다가 만기 후에는 자칫하면 ‘세금 폭탄’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1년간 벌어들인 모든 소득을 합산해 ‘종합소득세’를 매긴다. 세율은 소득구간에 따라 다르다. 1200만원 이하는 6.6%, 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는 16.5% 식으로 높아져 최고 41.8%(1억5000만원 초과)까지 올라간다. 사적 연금소득도 ‘종합소득’에 합산해야 하지만,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종합소득에 포함)을 제외한 사적 연금소득이 1200만원 이하일 때는 3.3~5.5%의 ‘연금소득세’만 원천징수한다(분리과세). 반면 12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에 포함시켜 종합소득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16.5~41.8%의 세율이 적용된다.
예컨대 임대 수익과 국민연금 등의 공적연금을 합해 연간 40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경우, 사적 연금소득이 1201만원이면 1200만원일 때보다 세금 총액이 32%가량 불어난다. 연금 소득이 1200만원을 넘는 바람에 분리과세 되지 않고 종합소득에 합산돼 최고 세율 구간이 16.5%에서 26.4%(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로 한 계단 올라가기 때문이다. 단, 총 연금액에 따라서(350만원 이하~1400만원 초과까지 네 구간) 최대 900만원까지 연금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도 연금저축 유지율이 너무 낮고, 중도해지 시 손실이 큰 점, 불합리한 연금소득세 등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유지율을 높이려면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수수료율을 강제로 낮추면 금융회사들이 상품 판매를 꺼려 연금저축 가입률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