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정란에서 유전자 일부를 잘라내고 편집하는 실험이 영국에서 승인됐다. 유산(流産)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밝히기 위해서다.
영국 인간생식배아관리국(HFEA)은 1일(현지 시각) "영국 프랜시스크릭 연구소의 캐시 니아칸 박사 연구팀이 신청한 인간 유전자 편집 실험을 허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중국 연구진이 버려진 인간 수정란으로 유전자 편집 실험을 진행한 바 있지만, 국가기관의 승인을 받아 공식으로 실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정 유전자를 편집한 인간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면 '맞춤형 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치열한 윤리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번 실험용 수정란은 기증을 받아 조달할 계획이다. 니아칸 박사는 "수정 뒤 7일 정도 분열이 진행된 배아(포배·胞胚) 256개에서 일부 유전자를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 잘라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유전자 가위는 잘라내고 싶은 특정한 유전자(DNA)에만 결합하는 유전물질인 RNA와, 유전자를 잘라낼 수 있는 효소를 결합한 형태이다. RNA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면 어떤 유전자도 잘라낼 수 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지는 수정란 100개 중에서 포배 단계까지 이르는 것은 50개 정도이고, 그중 25개 정도만이 자궁에 착상된다. 시험관 아기와 같은 난임 시술의 성공률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쥐와 원숭이 실험을 통해 'OCT4'라는 특정한 유전자가 수정란의 성장과 착상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니아칸 박사는 이 유전자가 사람 몸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유전자 가위로 잘라내고 경과를 지켜볼 예정이다.
HFEA는 니아칸 박사 연구팀이 실험을 최장 14일까지 진행한 뒤 배아를 폐기하는 조건으로 실험을 허용했다.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도 금지했다. 인간이 조작한 수정란이 태아로 자라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는 "이번 실험이 맞춤형 아기를 만드는 시도가 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인간 수정란을 유전자 가위로 편집하는 실험은 전 세계 생명공학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과학아카데미와 영국 왕립학회 등이 주관한 국제회의에서는 "유전자를 편집한 수정란을 임신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하지만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치명적 유전병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험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한국에서는 인간 수정란을 편집하는 실험이 생명윤리법으로 전면 금지돼 있다.
입력 2016.02.0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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