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전성시대가 저무는 것일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발생한 총 이익의 84%(작년 기준)를 독차지해온 미국 애플마저 성장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애플은 작년 4분기에 매출 759억달러(약 91조3077억원), 순이익 184억달러(약 22조1352억원)를 기록했다고 26일(현지 시각) 밝혔다. 전년 동기(同期) 대비 매출은 1.7%, 순이익은 2.2% 늘었다. 미국 기업의 분기 순이익으로는 사상 최대치다.

하지만 매 분기마다 매출·순이익 증가율이 두 자릿수 이상이던 것이 이번에는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게다가 애플은 "올 1분기에는 매출 500억∼530억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1년 전보다 최대 14% 감소한 수치다. 애플의 분기 매출이 하락하는 것은 2003년 1분기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에 '저(低)성장 시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고 해석한다.

아이폰 질주에 급브레이크 걸려

애플은 2014년 화면 크기를 키운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를 내놓으며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다. 판매량과 매출·순이익이 모두 급증했다. 하지만 작년 9월에 선보인 신제품인 '아이폰 6s'와 '아이폰 6s 플러스'는 "전작(前作)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손가락 압력으로 기능을 조작하는 '포스터치(force touch)' 기능을 제외하고는 기존 제품과 성능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미지근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매출이 감소했다. 매 분기마다 90∼100% 이상 성장했던 중국에서도 주춤거렸다. 애플은 작년 4분기에 중국 시장(대만·홍콩 포함)에서 184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4% 늘었으나 직전 분기에 기록한 매출 성장률(99%)과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이다.

올 1분기 전망은 더욱 어둡다. 캐나다의 투자은행 'RBC캐피털마켓'은 "올 1분기에 아이폰 판매량은 4500만대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실적발표에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면서도 "시장에서 전망하는 것만큼 판매량이 줄진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먹구름 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IDC와 스태티스타 등에 따르면 2010년 75.6%, 2011년 62.3%에 달했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은 작년 9.8%로 추락했다. 올해는 0.3%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애플에 앞서 세계 스마트폰 업체들은 대부분 어려움에 빠져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은 2013년 3분기에 영업이익 6조7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2년 만에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난 상태다. 삼성은 고가(高價)폰 시장에서는 애플에, 중·저가폰 시장에서는 화웨이·샤오미 등 중국 업체에 밀리는 형국이다.

중저가폰 시장을 휘어잡던 샤오미도 성장세가 꺾였다. 샤오미는 작년 1억대 판매를 목표로 세웠지만, 실제로는 약 7700만대 정도를 판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로 진출하려던 계획이 특허·품질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 시장이 각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죽기 살기' 식의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치킨 게임'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과거에는 특정 기업이 혁신적인 기능·서비스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을 때 약 1년 정도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했다. 이제는 스마트폰 기능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이런 시간 차이가 크게 줄었다.
심지어 애플이 포스터치 기능을 탑재한 아이폰6s를 출시하기도 전에 중국 화웨이가 먼저 이 기능을 넣은 신제품을 선보일 정도다. 또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면서 소비자들은 최신 스마트폰이 나와도 잘 바꾸지 않는다. 1~2년 전에 나온 제품도 신제품과 큰 차이가 없어 충분히 쓸 만하기 때문이다.

서강대 정옥현 교수(전자공학)는 “경기침체, 기술 평준화 등으로 인해 스마트폰 시장은 더 이상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향후 가격 경쟁이나 부가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방향으로 업체들의 전략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